[국민논단] ‘신냉전’ 아닌 ‘각자도생’의 시대

입력 2025-09-08 00:33

냉전 시대는 적대적 계급 대립
지금은 각국의 이익 극대화

구 소련은 군사대국이었으나
지금 중국은 막강한 경제대국
경제적 디리스킹조차 불투명

미국 위기 경제 쇠퇴에서 비롯
우방국 '강탈' 지속될 가능성

최근 최대의 외교적 이벤트는 중국 톈진에서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중국의 전승절 행사였다. 두 행사는 모두 ‘반미 연대’로 해석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SCO의 상징적 장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셋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전승절의 상징적 장면은 시진핑 왼쪽에 푸틴, 오른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걸어가던 모습이다. 이를테면 ‘좌푸틴, 우정은’이었다. 1990년 한·소 수교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외교적인 고립의 시대’를 보냈던 북한은 국제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언론은 ‘신냉전의 시대’가 왔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세계 질서 변동을 ‘냉전의 부활’로 이해하면 인식의 혼돈을 초래하고, 국제 질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냉전시대와 현 시기 국제 질서가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자.

첫째, 대결 구도의 본질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적대적인 계급 대립을 전제했다. 자본가 계급을 타도의 대상으로 봤다. 사회주의 이념 자체가 자본주의 타도를 목표로 하는 이데올로기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없었다.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했다. 자본가(기업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이룩한 재산을 다 빼앗기고 독재 치하에 살아야 했다. 자본주의 국가 간의 연대는 생존의 연대이며 동시에 공포의 연대였다. 일치 단결하기가 용이했다.

현 시기 세계 질서는 이념적 대립도, 계급적 대립도 아니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중국몽)을,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모디는 강한 인도와 힌두민족주의에 기반한 ‘힌두 인도’를, 푸틴은 ‘강한 러시아’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ONCE VATAN’(조국이 우선)을 표방하고 있다. 지금 시대는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가깝다. 전승절 행사에서 중국·러시아·북한의 연대 역시 이익 극대화를 위한 일시적 통일전선의 측면으로 봐야 한다.

둘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경제 교류가 거의 없었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일국 내에서 계획경제를 모델로 했다. 상품과 시장은 착취의 수단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에 사적 소유를 부정하며 전면적 국유화를 단행했다. 심지어 사회주의끼리도 경제적 교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소련은 군사 강국이었지만 경제 대국은 아니었다. 미국의 외교관 조지 케넌이 주장하는 소련 봉쇄를 해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타격은 거의 없었다. 원래 경제적 교류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경제대국이면서 동시에 군사 대국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7%를 차지하고, 전 세계 제조업의 약 32%를 점유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디커플링은 어렵고, 디리스킹(De-risking)이 실제로 가능한지도 매우 불투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석유를 수입한다는 이유로 인도에 50%의 관세폭탄을 때렸다. 그러나 러시아 석유를 더 많이 수입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20%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희토류 수출금지’로 보복하자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정작 미국 스스로 디리스킹은커녕 관세 부과조차 뜻대로 못하고 있다.

셋째, 진영 내에서 미국의 위상이다. 냉전 시기에 미국은 경제적으로 부강했다. 미국의 대전략은 우방국들이 소련 견제를 도와줄 경우 경제 성장을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마셜 플랜이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 16개 국가들에 1948년부터 1951년 기간 동안 총 130억 달러(현재 가치 약 1700억 달러)를 지원했다. 유럽 경제 재건과 공산화 방지에 큰 도움이 됐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도 같은 메커니즘이었다.

현재 미국의 위기는 경제적 쇠퇴에서 비롯됐다. 제조업 경쟁력 약화와 대규모 재정적자는 특히 심각하다. 미국은 오히려 안보를 의존하는 우방국들에 ‘경제적 삥뜯기’를 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일본, 한국이 대표적이다. 앞으로는 ‘미국의 갑질’에도 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 질서는 ‘각자도생의 시대’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되 자주국방을 강화하고, 일본 등 중견국과 연대해 다양한 외교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