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3일부터 3박5일의 방일, 방미를 통해 신정부가 나아갈 외교 이정표를 세웠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개선된 한·일 관계’를 유지 확대키로 했다. 과거사 갈등은 접어두고 경제·안보 분야에서의 미래 협력에 방점을 두는 대일 외교노선을 선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관세, 투자, 안보분담 분야에서의 온도차에도 불구하고 정상 간 신뢰에 바탕을 둔 포괄적 한·미동맹을 확고하게 이어갈 것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건다는 ‘안미경중’ 전략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재명정부가 표방한 ‘실용외교’가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 한·일 협력, 한·미·일 삼각 협력의 바탕 위에서 추진될 것을 천명했다.
지난주에는 중국에서 역사적인 정상외교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8월 31일 톈진에서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10개국 정상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칙과 원칙을 위반하는 일방적, 강압적 조치에 반대한다”고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비난했다. 이 회의에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모습을 나타냈다. 모디는 상호관세 50%의 날벼락을 맞고 숙적이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SCO에 합류했다. 8일에는 브라질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이 화상으로 열린다. 9개국으로 확대된 BRICS는 SCO와 더불어 반미·반서방 국제 연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사우스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공세에 공동으로 대항하기 위해 다자주의 강화, 자유무역 질서를 내걸며 또 하나의 대항 축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3일 베이징에서는 시진핑 주도 아래 항일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승 80주년 행사와 열병식이 열렸는데 28개국 정상이 참가했다. 여기서 시진핑은 “일방주의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역류에 직면해 단결 자강해야 희망이 있다” “간섭과 봉쇄에 맞서는 정의로운 투쟁을 중국은 굳건히 지지하겠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마가(MAGA) 정책으로 동맹과 우방국을 몰아치는 미국보다는 ‘중국에 줄을 서는 게 낫다’는 반미 대동단결의 메시지를 보냈다. 시진핑과 정상들이 도열한 가운데 진행된 열병식에서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최첨단 무기와 장비가 선을 보였다. 베이징 전승절 행사는 세계가 ‘신냉전 시대’로 본격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이벤트로 기록됐다.
주목받은 또 하나의 포인트는 북·중·러 3국 정상이 천안문 망루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자 정상외교 무대에 오른 것 자체도 놀랍지만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도열한 것은 냉전이 한창이던 1959년 이후 56년 만의 일이다.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 3자 연대 구축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베이징에서 북한판 ‘안러경중’ 외교를 선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러 군사 밀착과 동맹의 견고함을 과시했고 6년 만에 열린 시진핑과의 회담에서는 서먹했던 북·중 관계를 완전 복원하고 폭넓은 경제 협력을 약속받았다. 이로써 핵 개발과 제재로 은둔하던 김정은은 러·중과의 연대를 통해 든든한 뒷배를 갖게 됐다.
정상외교의 계절은 이어질 전망이고 한국 외교는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이 대통령은 9월 유엔 외교를 시작으로 10월 한·중·일 정상회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의장으로서의 정상외교에 나선다. 머지않아 트럼프·김정일 정상회담도 열릴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 협력과 연대는 최대한 넓히고 대립과 갈등은 최소화함으로써 자율 공간을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이재명표 실용외교가 추구할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