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가장 흔히 발생하는 백혈병은 항암 요법 등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근래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일부 환자는 겉으로 완치된 듯 보여도 몸속에 극소량의 암세포가 남아있어 재발 위험이 높은 경우가 있는데, 이를 ‘미세잔존질환(MRD)’이라고 한다.
과거엔 MRD의 확인이 매우 어려웠지만 최근에는 골수검사 때 측정이 가능해졌다. 이전보다 100배 이상 민감한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이 도입돼 기존에 놓칠 수 있었던 백혈병 세포까지 검출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측정한 환자의 MRD 수치에 따라 항암 강도와 치료 주기를 조절하면 생존율을 5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항상 재발 불안에 떨어야 했던 백혈병 환아와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김혜리 교수팀은 지난 10년간 소아급성림프모구백혈병으로 치료받은 환자 212명을 대상으로 치료 단계별로 MRD 값을 측정하고 0.1% 이상 양성이 나올 경우 더 강한 항암치료로 전환했다.
1차 치료(관해유도요법) 이후 MRD 양성이었던 환자는 21명이었고 그중 12명에게 한 단계 강화된 치료를 적용했다. 그 결과 치료를 강화하지 않은 환자의 5년 무사건 생존율은 19%였으나 강화한 집단은 90%로 생존율이 4.7배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차 치료(공고요법) 이후 MRD 양성이었던 환자들 역시 치료를 강화하지 않은 경우 75.4%의 생존율을 보였지만 치료 강화 집단은 95.2%의 생존율을 기록했다. 치료 강화 환자군에선 통상적인 항암 치료 부작용 외에 중증 합병증은 관찰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8일 “이번 연구를 통해 미세잔존질환 수치를 기준으로 환자 상태에 적합한 치료 강도로 조정하면 재발 위험이 높은 소아 백혈병 환자의 생존율도 크게 높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미세잔존질환 값을 바탕으로 정밀한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고 완치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혈액 연구(Blood Research)’ 최신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