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 밤이 되면 본격 활동… 열은 바이러스와 싸우는 신호

입력 2025-09-09 00:07

“선생님, 이상하게 애들은 꼭 밤에만 아픈 것 같아요. 낮에는 잘 놀다가도 밤만 되면 불덩이가 돼요.”

소아과 진료실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낮에는 괜찮던 아이가 밤이 되면 열이 오르고 부모는 밤새 아이 곁을 지키며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왜 아이들은 꼭 밤에만 더 아픈 걸까. 여기에는 몸의 생체 시계와 면역 시스템의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 몸에는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낮 동안 분비되며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몸을 활동적으로 만들어주지만 밤이 되면 양이 줄어든다. 이때부터 면역 세포들이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낮 동안 잠잠하던 면역 세포들은 밤이 되면 몸속을 순찰하며 침입한 바이러스와 세균을 찾아내 싸운다. 이 치열한 전투 과정에 나타나는 신호가 바로 ‘열’이다. 즉, 밤에 열이 오르는 것은 아이 몸이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열은 적일까, 아군일까. 과거엔 열 자체가 뇌 손상을 준다는 오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감기나 바이러스 감염에서 나타나는 열은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체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면역력은 강해진다. 다만 뜨거운 이마, 힘 빠진 모습, 혹시 모를 열성 경련 때문에 부모가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소아과 의사는 단순히 체온계 숫자만 보지 않는다. 39도라도 아이가 잘 먹고 잘 논다면 지켜보라고 하고 반대로 38도라도 처져 있으면 더 주의 깊게 살핀다. 중요한 것은 체온보다 아이의 전반적 컨디션이다. 그래서 소아과 의사는 탐정처럼 아이를 세심히 관찰하며 숨어있는 ‘적’을 밝혀내고 필요한 경우 약을 처방한다. 동시에 해열제와 수분 보충 같은 방법을 알려주어 아이가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다.

해열제는 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잠시 식혀주는 ‘소나기’ 같은 역할을 한다. 힘들어하면 사용해 편히 쉬게 하고 충분한 수분 섭취로 면역 체계가 힘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단, 3개월 미만 아기의 열이나 아이가 심하게 처지거나 경련을 보이는 경우엔 지체없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오늘 밤에도 아이의 열 때문에 마음 졸이는 부모가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우리 아이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 몸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이는 성장하며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