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자 치료의 진보… 한두 달 걸리던 전립선암 치료 1∼2주로

입력 2025-09-09 00:09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 이성욱 방사선종양학 교수가 전립선암 환자에게 최근 개발된 ‘극저분할 방식’의 양성자 치료를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제공

방사선보다 장점 많은 차세대 기술
정상조직 손상 최소화… 부작용 적어
최근 ‘극저분할 방식’ 개발돼 적용
치료기간 줄고 치료비도 절반으로
전립선암 이어 폐암 치료도 시도

차세대 방사선 치료로 불리는 양성자 치료가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양성자 치료는 수소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를 빛의 60% 속도로 가속해 증폭된 에너지(양성자 빔)로 암세포만 정밀하게 타격해 파괴하는 첨단 입자 방사선 치료다. X선을 이용하는 일반 방사선 치료와 달리 정상조직 손상을 최소화해 부작용이 적은 게 장점이다. 양성자 빔이 정상 조직은 그대로 통과하고 암 조직에 도달하면 에너지를 집중 방출해 암세포를 죽인 뒤 급격히 사라지는 현상인 ‘브래그 피크(Bragg Peak)’ 덕분이다. 국내에는 국립암센터와 삼성서울병원이 각 1대의 양성자 치료기를 운용하고 있으며 고려대의료원과 지방의 일부 대학병원이 도입을 추진 중이다.

빛처럼 빠르고 정밀하게

최근 이런 양성자 치료의 효율성과 환자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새로운 기법이 개발돼 전립선암을 중심으로 일부 암 치료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존에 하루 한 번씩 20~30회에 나눠 하던 양성자 치료를 1회 조사(照射) 강도를 크게 올려서 단 5회로 단축한 것이 특징이다. 치료 횟수가 대폭 줄면서 최소 한 달에서 두 달가량 걸리던 치료가 1~2주 만에 끝나고 환자의 빠른 일상 복귀가 가능해졌다. 또 전립선암은 양성자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그간 3000만~4000만원의 치료 비용을 환자가 고스란히 부담했는데, 이 기법을 통해 치료비를 절반가량으로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종양 제어율이나 부작용 발생률은 기존 치료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 이성욱 교수팀은 국소 단계 전립선암(1~3기) 환자를 위한 ‘극저분할 양성자 치료 프로토콜’을 개발해 임상에 적용 중이라고 8일 밝혔다. 2007년 양성자 치료 도입 초창기에는 전립선암에서 통상 하루 한 번씩 30~40회의 분할 치료를 필요로 했다. 암센터는 기술 진보를 통해 2013년부터 치료 횟수를 20~30회로 축소한 ‘저분할 방식’을 시도해 왔고 이번에 다시 5회까지 줄인 극저분할 방식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는 “그간 극저분할 방식을 하지 못했던 것은 5회 만에 종양을 제어할 수 있는 양성자 빔을 쏘려면 1회에 조사되는 양을 3~4배 늘려야 하는데, 기술적인 면에서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전립선 위치를 정확히 추적해 주는 ‘콘빔 CT’와 양성자 선량을 정밀하게 맞추는 ‘펜슬빔 스캐닝’ 기술의 발전이 지금의 극저분할 양성자 치료를 가능케 했다.

다만 한 번에 조사되는 양성자의 세기를 상승시키면 주변 장기들이 손상될 확률도 높아지는데, 양성자 치료의 특징인 ‘브래그 피크’ 효과를 극대화해 방광과 직장 등 주변 정상 조직 손상을 최소화한다. 치료 전에 주변 조직 보호 물질(하이드로겔)을 삽입하는 시술을 병행하는 것도 치료 안전성을 한층 높여준다.

이 교수는 “극저분할 양성자 치료라는 용어가 일반인에게 와 닿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양성자 슈퍼 샷’ 혹은 ‘양성자 울트라 샷’ 정도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치료는 하루 한 번씩 연속해서 5일간 할 수도 있지만 환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개 주말 전후로 3일과 2일씩 나눠 시행한다. 이런 방식의 치료를 통해 저·중위험 전립선암의 종양 제어율은 90%를 넘고 고위험 전립선암인 경우 70~80%를 달성하고 있다. 2021년 유럽의 임상연구에 따르면 284명의 저·중위험 전립선암 환자에 극저분할 양성자 치료를 시행한 결과 5년 무병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보고됐다.

이 교수는 “그간 환자들은 1~2개월의 긴 치료 동안 일을 그만 두거나 지방 환자인 경우 병원 근처에 방을 구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많았다”면서 “이제 치료 기간이 확 줄고 비용이 낮아지면서 ‘고비용 치료’로 여겨지던 양성자 치료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국립암센터는 지금까지 30명의 전립선암 환자를 이 방식으로 치료했고 치료 연관 부작용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도 최근 일부 전립선암 환자 대상으로 극저분할 양성자 치료를 시작했다. 다만 진행·전이성(4기) 전립선암 환자들은 치료 대상이 아니다.

폐암에서도 치료 시도

근래 폐암에도 극저분할 양성자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암종에서 양성자 치료는 건보가 적용되고 있지만 전립선암과 유방암은 예외다. 다른 암에 비해 5년 생존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양성자 치료가 굳이 필요한지 회의적이고 환자 수가 많아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아울러 “양성자 치료와 함께 최근 중입자 치료(탄소 입자 활용)도 차세대 정밀 방사선 치료로 주목받고 있는데, 저·중위험 전립선암에선 치료 성공률이 90% 이상으로 비슷하다. 고위험 전립선암은 양성자냐 중입자냐 보다는 전립선에 대한 조사 선량을 좀 더 올린다든지 병용 약물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치료 결과를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극저분할 양성자 치료의 횟수가 중입자(10~12회)보다는 적어서 치료 기간이 짧고 비용이 더 저렴하므로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국립암센터는 더 업그레이드된 기능이 탑재된 3세대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해 2027년 말이나 2028년 초 가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