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용기가 생길 때가 있다. 평소라면 익숙한 일만 할 텐데, 그럴 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곤 한다. 갑자기 솟은 용기는 단박에 추진력을 갖는다. 특히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서 그렇다. 내게는 그런 경험이 몇 번 있다. 좋아하는 해금 연주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악기라는 것은 단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으면서 덜컥 신청했다. 내 세계의 풍경이 아닌 다른 풍경을 만나보고 싶었다. 걸음마 수준으로 중임무황태를 연습하고, 어설프지만 ‘오나라’ 한 곡 정도는 할 수 있게 돼 크게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크로키를 배워 본 일이다. 그림 역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그린 것이 전부였는데,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소규모 클래스 공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바로 신청했다. 10명 정도 사람들이 매주 모여 둥글게 앉아 한 사람씩 모델로 서며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을 그릴 때 턱이 아니라 정수리부터 그려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손을 잘 못 그려 주로 주머니에 넣은 손만 그리기도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왼손 그리기’를 해보자고 했다. 오른손을 쓰는 사람은 왼손으로, 왼손을 쓰는 사람은 오른손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아직 오른손도 서툰데 왼손으로 어떻게 그리지?” 싶었는데 정해진 짧은 시간 동안 그려야 하는 크로키라 생각할 겨를 없이 그렸다. 수강생들의 완성된 그림을 바닥에 펼쳐두고 다 같이 봤다. 선은 정교하지 않으나 그림의 느낌이 오른손으로 그릴 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오른손 그림은 머릿속으로 생각한 방향으로 손을 움직였다면 왼손 그림은 나의 통제와는 무관하게 손이 가는 대로 그렸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그저 손의 감각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글을 쓰면서 나는 종종 그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내 현재의 감각에 의지하면 나의 고정된 관념과는 먼, 내가 알지 못하는 풍경을 볼 수 있게 된다.
안미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