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중 관계 복원에 더 꼬여가는 비핵화

입력 2025-09-06 01:30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만나 악수하고 있다. 북·중 정상회담은 2019년 1월 김 위원장의 방중과 같은 해 6월 시 주석의 평양 방문 이후 6년여 만에 성사됐다. 로이터연합뉴스

6년 만에 열린 북·중 정상회담은 그 형식과 내용 모두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시사점을 담고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승절 열병식 상석에 나란히 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4일 회담하며 만찬을 곁들여 극진히 예우했다. 이번에 방중한 해외 정상 중 시 주석이 식사를 함께한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 위원장뿐이다. 이는 북·러 밀착과 맞물려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 회담 결과로 이어졌다.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은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양국 우호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주로 경제 분야가 협력 과제로 거론되면서 북한의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 외교 기조도 한층 뚜렷해졌다.

주시할 대목은 2018~2019년 다섯 차례 북·중 정상회담 발표문에 매번 언급됐던 한반도 비핵화가 이번에 빠졌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핵을 영원히 내려놓지 않겠다”고 재차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언급이 생략된 발표문은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했거나 기존보다 후퇴한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첫 다자외교 무대에서 여러 성과를 챙긴 셈이 됐다.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에 맞춰 경제 생명줄인 중국의 지원을 확보했고, 러시아의 안보 후원을 재확인했으며, 한·미·일에 맞설 북·중·러 연대를 과시한 데다, 최대 목표인 핵보유국 지위에 다가선 모습도 연출했다.

중국이 북한에 이런 판을 깔아준 건 미국과의 패권 대결을 염두에 둔 포석일 터라, 미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려는 우리 대북 전략은 난도가 한층 상승했다. 향후 북·미 대화가 추진돼도 중·러를 ‘뒷배’로 둔 북한의 요구 수위는 전보다 높아질 테고, 이를 제어할 수단은 줄어들 것이다. 더 까다로워진 북핵 문제를 풀어가려면 확고한 비핵화 원칙 아래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투 트랙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대화를 추진하되 핵보유국이란 전제가 테이블에 오르지 않도록 한·미 공조를 굳건히 하고,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비핵화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외교 역량을 집중할 때다. 다음 달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첫 시험대일 것이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서 구축한 북핵 외교 지형을 우리 전략에 맞게 재구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