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사상 첫 다자무대 등장으로 북·중·러 연대 구도를 통한 외교 고립을 탈피하고 미국과의 협상 레버리지를 얻게 됐다. 특히 자신들이 원하는 핵보유국 지위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김 위원장의 방중 카드로 급변한 외교 지형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을 이뤄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김 위원장은 첫 다자무대에서 중국, 러시아라는 강대국과 연대해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확보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6년 만에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복원의 첫 발을 뗐다. 비록 북·중·러 3자 회담은 불발됐지만 김 위원장은 사흘간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며 정상국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진영을 만들고 싶어하는 김정은으로서는 북·중·러 진영주의를 얘기하면서 본인이 외교무대에서 외톨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행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핵 협상 국면에서도 3각 연대를 기반으로 다양한 카드를 검토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북·중·러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당신과도 언제든 함께 설 수 있다’고 말한 셈”이라며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한이 중·러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핵보유국인 중·러와 한 무대에 서면서 북한이 원하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반전 계기도 마련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는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라며 “핵보유국이라고 과시하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북·중·러 결속을 강화할 것을 암시했다”고 평가했다.
외교적 이익 외에 중국과 관계 회복을 통한 경제 지원 등 다양한 반대급부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앞선 2일 국회 정보위 비공개 회의에서 “북·중 관계 복원을 통해 대외 운신의 폭을 확대하고 중국의 경제적 지원 견인, 체제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북·중 관계 개선으로 수혜가 예상된다”며 “경제는 중국이고 안보는 러시아인 ‘안러경중’을 이어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 방중’ 돌발 카드는 반대로 한·미·일 공조 강화를 통한 비핵화 논의를 시작한 이재명정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과 대북 정책 논의를 구체화하기도 전에 북한이 먼저 수를 놓으면서 북한에 끌려갈 위험이 커진 탓이다. 정부는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모두 끝난 뒤 종합적 판단을 내리겠다는 분위기다. 북·미 대화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 북한을 일단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의 속성 상 우리가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이 되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단계적으로 하나씩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상 윤예솔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