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되면 규제 343개·형벌조항 6000개… 성장 의욕 꺾어”

입력 2025-09-05 00:45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늘어나는 ‘계단식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기업 사이즈가 커질수록 규제가 커지니 기업이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성장 정체를 가져오고 특히 민간의 활력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업성장포럼 출범식’ 기조연설에서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계단식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설수록 오히려 지원은 적어지고 규제만 늘어나다 보니 기업의 성장 유인이 없다는 지적이다.

기업성장포럼은 대한상의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기업 규제를 개선하고 정책 대안을 제안하기 위해 만든 포럼이다. 대한상의와 김영주 부산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차등규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 관련 12개 법안에 총 343개의 기업별 차등 규제가 있고 경제형벌 관련 조항은 6000개에 달하는 실정이다.

최 회장은 343개 규제를 조목조목 나열한 대형 패널을 제시하며 기업 규모에 따른 지원이나 규제 방식이 저성장 국면에 적합하지 않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올라가는 비율은 0.04%에 불과한 반면 중소기업으로 내려오는 비율은 6.5%에 달한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모든 기업이 중소기업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중소기업 1만개 중 4곳만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 100개 중 1~2개만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계단식 규제는) 계속 경제 성장을 한다는 가정 아래에서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며 “성장을 안 하는데 사이즈별 규제를 하면 성장할 인센티브가 떨어진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제는 대기업이 되는 것을 칭찬하고 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승헌 맥킨지 한국오피스 대표는 기조강연에서 “기업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 스스로 성장 로드맵을 구축할 수 있도록 시장에서의 안전장치와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수 목적 반도체와 생성형·에이전트·피지컬 인공지능(AI)을 새로운 성장 기회로 지목하면서 “한국이 가진 제조업 경험과 데이터 역량을 활용한다면 다시 성장을 가속화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경제단체들이 규제 개선을 위해 뭉치기로 한 건 기업 성장 둔화의 배경에 중첩된 ‘성장억제형’ 규제와 경제형벌 규정이 자리한다는 판단에서다. 대한상의는 20~30년 전 대기업의 10년간 연평균 매출액증가율은 10%를 상회했지만 최근 10년 간은 평균 2.6%로 4분의 1 토막이 났다고 진단했다.

기업성장포럼은 앞으로 분기별 1~2회 정례 포럼을 열고 기업규모별 차등규제가 기업 성장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연구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등 정부 인사들도 참석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