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도 베트남·필리핀 등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수출이 석 달째 늘며 전체 수출 실적을 떠받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대(對)아세안 수출은 대중, 대미 수출에 이어 3위 수준이었지만, 미국의 자동차·철강 관세 여파가 본격화한 지난 7월부터 두 달 연속으로 대미 수출을 앞질렀다. 트럼프발(發) 관세 타격을 아세안 수출이 메워주며 3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 달성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아세안 수출액은 108억9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1.9% 늘며 역대 8월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주요 지역별 수출 규모에서도 1위인 대중 수출(-2.9%·110억1000만 달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3위인 대미 수출(-12.0%·87억4000만 달러)을 크게 앞섰다. 이에 지난달 전체 수출도 1.3% 증가한 584억 달러를 기록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관세 영향으로 대미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아세안 수출 비중은 꾸준히 느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아세안 수출 약진은 대표적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에만 전년 대비 47.0% 급증한 27억 달러어치가 수출되며 전체 대아세안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이어 선박(359.9%), 이차전지(23.9%) 등이 수출 증가세를 뒷받침했다.
국가별로도 반도체 수출과 밀접한 베트남(54억 달러·7.0%), 싱가포르(21억6000만 달러·54.6%), 말레이시아(10억4000만 달러·12.8%) 등의 증가 폭이 컸다. 대아세안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베트남과의 교역품목 1위도 반도체다. 여기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말레이시아 등에 잇달아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면서 한국산 반도체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시장 다변화 흐름 속에 경상수지도 27개월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7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 7월 경상수지는 107억8000만 달러(약 15조원) 흑자로 동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국가의 재화·서비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값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누적 흑자 규모(601억5000만 달러)도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22.2%(109억4000만 달러) 늘었다.
그러나 미 관세 여파가 누적되며 수출 플러스 행진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철강 등 관세 대상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에 부정적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내년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낮춰잡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IB 8곳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이 올해 5.1%에서 내년 4.4%로 0.7% 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세종=양민철 기자, 이의재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