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찾은 경남 통영의 삼호씨푸드 멸치 공장. 200㎡(약 60평) 남짓한 작업장은 기계 소음으로 가득했다. 컨베이어벨트 위로 은빛 멸치가 쏟아지자 인공지능(AI)과 결합된 초고속 카메라가 모양과 색, 크기를 읽어냈고 곧바로 138개의 미세 노즐에서 1000분의 1초 단위로 공기가 분사돼 불량 멸치와 이물질을 밀어냈다. 뒤이어 작업자 두 명이 손끝으로 멸치를 훑으며 검수를 이어갔다. 김명환 삼호씨푸드 품질관리팀장은 “예전에는 여섯 명이 종일 앉아 선별해야 했는데 AI 도입 뒤에는 작업자들의 눈 피로도와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최근 멸치 산업은 기후 변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해양기후예측센터에 따르면 지난 7월 동아시아 해역의 해면수온은 평년보다 1.2도 높았다. 지난해 경남 연안에선 고수온 특보가 62일간 이어졌다. 수온이 오르면 멸치에 기름기가 돌아 상품성이 떨어진다. 해파리까지 대량 출현해 어획 과정에서 멸치가 짓눌리는 피해도 적지 않다. 김규헌 삼호씨푸드 대표는 “요즘은 상품화하기 어려운 작은 멸치가 많이 잡힌다. 좋은 원물 자체가 귀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통업계도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추석 롯데마트의 멸치 선물세트 판매량은 전년 대비 40% 가량 줄었다. 고급 세트에 쓸만한 원물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공급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건조 과정에서 유입된 작은 플라스틱 파편이 금속탐지기로도 걸러지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이쌍진 롯데마트 수산 MD는 “수온 상승에 어획량이 줄고 코로나 시기 유류비·인건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멸치잡이 선단 규모가 축소됐다”며 “줄어든 원물 속 좋은 멸치를 골라내는 게 관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삼호씨푸드는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AI 광학 선별기를 들였다. 양품과 모양·색깔이 다른 불량품을 AI가 자동 판별해 제거하는 방식이다. 도입 석 달 만에 작업 속도가 20% 빨라졌다. 김 대표는 “아무리 공정을 늦추고 인력을 늘려도 한계가 있었는데 지금은 안심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기술을 상품 전략으로 연결했다. 올해 추석 처음으로 AI 선별 멸치 선물세트를 내놓는다. 주정·이온 살균 과정도 차별화된 공정이다. 멸치와 조화를 이루는 견과류·새우까지 담은 올인원으로 구성했다. 김 대표는 “한때는 일본산 멸치가 최고로 꼽혔지만 해수온 상승과 어민 고령화로 일본 상품이 줄면서 최근엔 한국산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AI 선별 기술을 ‘신선지능’ 전략의 대표 사례로 내세우고 있다. 2022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어떤 신선식품을 골라도 ‘실패 없는 장보기’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AI 선별은 소비자에게 안심을 주는 장치이자 신선식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서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 글·사진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