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했으며 딸 주애의 권력 승계 준비에도 소득을 얻었다고 워싱턴DC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평가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3일(현지시간) 국민일보 서면 질의에 “북·중·러 3자 협력은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비핵화 관련 합의를 시도할 때 중국·러시아의 참여와 지지를 필요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김정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동시에 만난 것은 국제무대에서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한편 트럼프와 향후 재회할 경우 협상을 더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 석좌는 또 “중국은 북·러 관계 심화를 경계해 왔다. 김정은의 열병식 참석은 북·중 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김정은의 목적은 시진핑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푸틴과의 유대를 재확인하며 반서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북·중·러가 앞으로 사안별로, 또 거래 기반에 따라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을 찾게 될 것”이라며 “러시아는 탄약·미사일 물자, 전후 복구를 위한 건설 인력 수요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동안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서로에 이익이 되는 관계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방중을 앞두고 북한 내 미사일 공장을 시찰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모두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신호를 보낸 상징적 행동”이라고 짚었다.
북·중·러 정상은 이번 열병식에서 ‘반미 연대’를 결속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런 판단은 시기상조라는 진단도 나왔다. 제임스 박 퀸시연구소 동아시아프로그램 연구원은 “러시아와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소외돼 권위주의 연합을 원할 수 있지만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리더로 인정받겠다는 더 큰 야망을 품고 있다”며 “중국 입장에서 북한까지 포함한 협력을 추진하면 한·미·일 3국 공조 강화를 초래할 수 있어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주애와 동행해 방중한 것은 사실상의 ‘후계 선언’이라고 판단했다. 여 석좌는 “(김정은 동생) 김여정이 아닌 주애가 더 유력한 차기 지도자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정은이 딸을 이처럼 주목받는 국제무대에 동반한 것은 국내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주요 동맹국들 앞에서도 (후계자의) 정통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애에게도 외국을 공식 방문하는 첫 경험으로서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외교적 훈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일러 고문도 “주애에게 (이번 방중은) 외교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였다. 김정은은 국내외 모두를 향해 ‘이 아이가 후계자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며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제대로 준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주애는 잘 훈련되고 있으며 향후 핵 프로그램과 외교 방식 등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