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말,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어서야 난다’는 말은 유명하다. 올빼미가 황혼이 되어서야 날 듯 철학은 시대가 저물고 난 뒤에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 말이다(미네르바는 지혜를 상징한다). 이 말에서 나는 ‘늦었다고 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맨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위로의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한 최초의 때이니 이 말은 그야말로 진실인 것이다.
경제학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있다. 빵을 먹는 경우에 첫 번째 빵의 만족감보다 두 번째 빵의 만족감이 적고 두 번째 빵의 만족감보다 세 번째 빵의 만족감이 적다는 얘기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나타내는 표를 보면 행위자는 한계효용이 0일 때도 그 빵을 먹는다. 먹어봐야 효용이 증가하지 않는데도 먹는 것이다. 처음에는 ‘0인데 왜 먹지?’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곧 ‘아! 먹어야 0인줄 알게 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세 번째 빵을 먹고 더 이상 만족감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네 번째 빵에 손이 안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매우 급박하게 변화해가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라 실패를 많이 두려워들 하는 것 같다. 한 번의 실패는 곧 나락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사실 실패의 경험은 그 자체로 자산이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인생에는 이 길을 가봐야 실패할 것이 뻔하다는 느낌이 들어도 그 길을 끝까지 가보는 성실함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결과를 완전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패를 해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가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성실함이 없는 것을 스스로에게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앎과 무지는 깊은 관계가 있다. 물리학자 존 휠러는 ‘우리의 지식으로 이루어진 섬이 커지면 커질수록 무지의 해변도 그만큼 더 커진다’고 했다. 뭘 모르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결국 깨닫고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틀렸음을 안다는 것은 정답이 아님을 안다는 것이고 이는 그만큼 정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많이 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괜히 ‘무지의 지가 최고의 지’라고 한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사실은 뒷북이다. 전혀 뒷북을 치지 않으려 하면 인식 자체가 가능해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한 번 뒷북 친 일에 또 다시 뒷북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뭐를 몰랐었는지,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를 잘 짚어 봐야 한다. ‘한 번도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긴장만 불러일으킬 뿐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뒤늦게 오지만 가치가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실하게 실패할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