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깬 엄마가 이불을 젖히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내가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잔칫집에서 기름진 음식을 허겁지겁 삼킨 탓이었다. 엄마는 곧장 나를 업고 어둠 속 골목길을 달렸다. 변변한 약방 하나 없는 벽촌에서, 침을 놓을 줄 아는 이는 끝 집 할머니뿐이었다. 엄마의 등에 매달린 내 종아리는 헝겊 인형처럼 힘없이 덜렁거렸다.
엄마가 나를 내려놓자마자, 할머니는 잠자코 내 손목의 맥을 짚었다. 그러고서 등을 세게 쓸어내렸다. 엄마는 잠을 깨워 죄송하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새벽잠이 없는 노인네라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가 시렁에서 꺼내 온 것은 용 문양이 새겨진 백통 침통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비단을 펼치자 크고 작은 침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할머니는 중지만 한 침을 꺼내 알코올 솜으로 닦았다. 그리고 내 정수리에 침을 꽂았다.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그러나 이어서 엄지만큼 짧은 침을 인중에 꽂고는, 나사를 돌리듯 살살 비틀었다. 그 순간은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아팠다.
“애가 잘 참네.” 무뚝뚝하게 한마디를 남긴 뒤, 할머니는 침통을 정리했다. 나는 체기가 가시도록 잠시 누워 벽에 걸린 사진을 보았다. ‘회갑연’이라고 적힌 사진 속,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 뒤로 할머니의 외동딸과 사위가 서 있었고, 할머니의 무릎 위에 색동옷을 입은 손주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 앞에는 소박한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다.
깜빡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엄마가 내 배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새벽빛이 남청색으로 번져왔다. 걸을 수 있었지만, 나는 굳이 엄마의 등에 업혔다. 엄마의 숨소리가 내 심장보다 더 가까이 들려왔다. 그 기억은 작은 종이배처럼 조용히 떠올랐다. 어머니의 등에 실려 흘러가던 새벽길이 아득히 되살아났다. 인중에 맺혔던 핏방울 하나는, 아마도 내 기억이 덧칠해 낸 것이었으리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