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떻게 JMS 수렁에 빠졌고 탈출했나

입력 2025-09-05 03:06
JMS 피해자로서 최근 회고록 ‘흔적’을 펴낸 저자(가운데)가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한 센터에서 열린 JMS 대법원 선고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부모의 불화로 집에는 냉기가 돌았고, 친했던 친구는 별다른 이유 없이 차가워졌다.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던 차에 낯선 이들이 다가와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 같으냐’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이중 ‘사랑’이란 단어가 만 16세 소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면 지금 겪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란 호기심이 들었다.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의 성폭행 범죄를 고발한 저자는 자신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와 ‘나는 생존자다’에서 모자이크나 가명 없이 출연해 JMS의 만행을 밝히고 사법기관에서 이들의 범행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캐나다 국적으로 홍콩에서 자란 그는 한 기독교 학교 재학 중 JMS 전도단을 만났다. 설문조사를 하는 대학생으로 위장한 이들은 “추가 질문이 생기면 연락하겠다”며 저자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그는 이후 10여 차례 이어진 만남 요청을 모두 거절했었다. 그러나 괴로운 속내를 털어놓을 이를 찾지 못한 어느 날, 이들 중 한 명에게 ‘사랑이 무엇이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사이비의 마수에 걸려든 순간이다. 사랑과 관련된 성경 구절로 즉시 답장을 보내온 JMS 신도는 학생인 그를 위해 과외를 해주겠다며 약속을 잡았다.

저자는 이때 JMS식 비유 풀이를 접한다. 자신의 학교나 일반 교회에서 들은 것과는 다른 성경 해석이었다. 예수가 말한 바다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 입안에 돈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마 17:27)이 사실은 사람을 전도해 헌금을 받았다는 식이다. 이들은 “이 내용을 사람들이 알면 오해할 테니 노트는 집에 가져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이들에게 호감이 생긴 저자는 점점 JMS에 깊숙이 빠져든다. 그의 권유로 같이 한 차례 성경 강의를 들은 여동생이 “‘하나님이 인간의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라고 가르치는 게 이상하다”고 지적했지만 무시했다. 모든 게 “사탄의 이간질 탓”이라고 확신했다. 그 ‘신랑 예수’가 정명석 JMS 총재며, 한국 교도소에 갇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저자는 동요하지 않았다. “예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이들의 거짓말을 믿어서다. 자신에게 성경을 가르친 이들이 한결같이 친절한 데다 의사와 변호사 등 지식인이 꽤 있던 것도 그가 세뇌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부모를 속이고 한국에 와 결혼하지 않은 채 교리를 따르는 ‘신앙 스타’로 JMS 본거지에서 살던 그는 출소한 정 총재를 수행하며 그의 실체를 마주한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면서 ‘질 좋은 생명’이라며 외모가 뛰어난 젊은 여성을 전도하라는 말이나 총재의 저열한 농담을 들으면서 “자신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재림주를 의심한다’는 죄의식에 빠져 괴로워하던 그에게 돌아온 건 교주의 성폭력이었다. 이후로도 수차례 지옥을 경험한 저자는 국내외 지인의 도움으로 10년 만에 JMS에서 탈출한다.


책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그가 겪은 일을 연대기 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JMS와 법정 공방을 벌이며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그 가운데 만난 여러 조력자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유명 사이비 종교가 국내의 한 길거리서 포교하는 걸 본 그는 “지옥에 가려면 당신 혼자 가라”고 영어로 절규한다.

“이 종교 조직을 무너뜨린다 해도 수많은 사이비가 여전히 존재한다. 교주가 감옥에 가도 나는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버텨내며 소송을 이어갔고 생존자로 살아남아 이 책을 남겼다. “다음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는 이를 ‘설니홍조’(雪泥鴻爪·눈 속의 기러기 발자국)라고 표현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지나가도 기록은 흔적을 남겨 세상에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이다. JMS 피해자를 돕는 김도형 단국대 교수는 최근 취재진에게 출간 소식을 알리며 “메이플이 ‘일체의 인세를 받지 않겠다. 다른 피해자의 소송 비용에 써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