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바로 왼편에 서서 명실상부 비서방 반미 연대의 한 축임을 각인시켰다. 시 주석 반대편에 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동급 의전을 받은 김 위원장은 화려한 다자 정상외교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는 평가다.
검은색 방탄 리무진을 타고 천안문광장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전승절 행사 내내 시 주석의 극진한 예우와 환대를 받았다. 김 위원장 입장 순서는 여러 정상을 포함한 귀빈 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였다. 푸틴 대통령 직전 레드카펫을 걸으며 최고의 귀빈 대우를 받았다. 김 위원장이 경축행사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시 주석은 두 손을 맞잡고 환대했으며, 시 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한국말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중국 관영 CCTV는 김 위원장이 차량에서 내리는 장면부터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모습까지 모두 중계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행사 전 천안문을 배경으로 한 기념촬영에서도 시 주석 부부 좌우를 각각 차지했다. 이들은 이후 행사에서도 내내 어깨를 나란히 했다. 3국 정상이 앞장서고 다른 정상들이 뒤따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 참관을 위해 천안문 망루로 가는 중에도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이 이동하던 중간에 뒷짐을 진 상태로 시 주석의 말을 듣는 모습도 포착됐다. 천안문 망루에서 항전 노병들과의 인사도 시 주석, 푸틴 대통령, 김 위원장 순으로 진행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김정은은 시진핑 바로 왼쪽에 앉아 가장 중요한 외빈 두 명 중의 한 명의 대우를 받았다”며 “다자외교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 행사장에서 인민복이 아닌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금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전승절 80돌을 기념하는 배지도 달았다. 전날 베이징에 도착했을 땐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인민복은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의 혁명을 상징하는 옷이다. 김 위원장은 가장 최근 방중 때인 2019년 1월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때는 인민복을 고수했다. 그랬던 김 위원장의 양복 차림은 여러 정상이 모이는 자리에서 정상국가의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고 새로운 정상외교의 시작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함께 있는 장면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미국의 압박에 맞선 북·중·러 협력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원하는 건 중국,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해 강력한 외교적 힘을 얻을 정도로 결속하는 것”이라며 “그 연대가 더 강력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소장은 “김정은이 북·중·러 연대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한·미·일의 안보 협력 수준도 지금보다 더욱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상 기자,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