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에 선 ‘반미’… 시진핑 “평화냐 전쟁이냐 선택”

입력 2025-09-03 18:54 수정 2025-09-04 00:0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서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1959년 중국 건국기념일 열병식(아래 사진) 당시 김일성(맨 왼쪽) 북한 주석, 마오쩌둥(오른쪽 두 번째) 중국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맨 오른쪽) 소련 공산당 서기가 함께 망루에 선 이후 66년 만이다. 신화연합뉴스, 바이두 캡처

미국과 갈등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올라 “인류가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윈윈 협력과 제로섬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다시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이 중국·러시아·북한 등을 압박하면서 신냉전을 초래하고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이날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모든 국가와 민족이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고 화합하며 도울 때만 공동의 안보를 유지하고 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며 역사적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군사력 강화와 대만 통일 의지도 드러냈다. 시 주석은 “세계적 군대로의 발전을 가속화해 국가 주권과 통일, 영토 보전을 결연히 수호해야 한다”며 “인류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숭고한 대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일전쟁 승리에 대해선 “중국 인민은 굳건한 결의로 강대한 적과 불굴의 의지로 싸웠다. 피와 살로 만리장성을 쌓아 외세 침략에 맞서 완승을 거뒀다”며 “중국인은 막대한 민족적 희생으로 인류 문명을 구하고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했다”고 자평했다.

북·중·러 최고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옛 소련까지 포함하면 1959년 중국 국경절(건국기념일) 열병식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가 함께 망루에 선 이후 66년 만이다.

이번 전승절에 북·중·러 정상이 천안문에 나란히 오른 모습은 ‘반서방·반미 연대’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한·미·일 3각 공조에 대응해 세를 결집하고 미국의 경제 패권에 맞서 ‘공동전선’을 선언한 것과 같다. 미국이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경제·통상까지 뒤흔들자 ‘반미 블록’의 저항이 터져나온 것으로, 단순한 협력을 넘어 정치·경제적 세력화를 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북·중·러가 한·미·일에 맞서 벼랑 끝 대치전선을 구축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방의 제재·견제 대상인 3국은 ‘반미 블록’으로 묶여 있지만 이해 관계가 각자 다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종식을 앞둔 러시아는 미국과 협력을 통해 원하는 바를 최대한 이끌어와야 한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협상 마무리가 남아 있고,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사라지면 대북 제재의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과거 냉전 시대엔 진영 내 이해관계가 일치했는데 북·중·러는 그에 비해 ‘느슨한 연대’를 갖고 있다. 신냉전 체제의 고착화라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며 “(전승절은) 미국에 대한 저항과 불만을 터뜨리고 세를 과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최예슬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