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 최대 방산기업과 손잡고 현지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유럽산 우선 구매 정책)’을 내세운 유럽 국가들의 방산 블록화 움직임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한국 방산업체와 K9 자주포, K2 전차 등 다수의 수출 계약을 맺은 폴란드는 ‘K-방산’의 유럽 진출 전초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일(현지시간) 폴란드 최대 민간 방산기업인 WB그룹과 다연장로켓 ‘천무’의 유도탄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에 최종 합의했다고 3일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건 처음이다. 한화와 WB는 각각 51%대 49%의 합작법인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합작법인은 현지에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천무의 폴란드 수출형인 ‘호마르-K’에 탑재되는 사거리 80㎞급 유도탄(CGR-080)을 생산할 계획이다. 생산 물량은 폴란드에 우선 공급하고, 추후 탄종을 다양화해 유럽 내 다른 국가로도 수출한다는 방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폴란드 합작법인 설립은 유럽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5년간 8000억 유로(약 1294조원)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내놨는데, 그 핵심이 유럽 현지 생산이다. 폴란드가 최근 5년간 한국 방산 수출의 46%를 차지할 정도로 최대 고객인 점도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유럽의 방산 블록화로 수출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현지화를 통한 시장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맞춤 현지화 전략으로 글로벌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방산업계는 최근 폴란드에서 열린 방산 전시회에 총출동하는 등 유럽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동유럽 최대 규모 방산 전시회인 ‘폴란드 국제방산전시회(MSPO)’에는 한화그룹 방산 3사를 비롯해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국내 주요 방산기업이 대거 참가했다.
한화오션은 폴란드군의 잠수함 도입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부스를 꾸렸다. 어뢰와 대함·순항미사일 등이 탑재되는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을 전시했다. 최근 폴란드와 약 9조원 규모의 K2 전차 2차 이행 계약을 체결한 현대로템은 폴란드형 K2 전차를 선보였다. 후속 사업을 위한 홍보 성격도 있다. 이번 전시회에 처음으로 단독 참가한 현대위아는 ‘경량화 105㎜ 자주포’를 전시했다.
KAI는 2022년 폴란드와 48대 공급 계약을 체결한 다목적 전투기 FA-50을 비롯해 차세대 첨단 국산 전투기 KF-21,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KUH), 소형무장헬기(LAH) 등 주력 기종을 내놨다. KAI는 폴란드와 후속 사업 추진을 위해 실질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폴란드는 국내 기업의 유럽 시장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며 “향후 양국 협력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