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두고 대통령실이 정세 변화를 주시하며 숙고에 들어갔다. 북·중·러 3각 연대가 공고해질수록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에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한·미·일 공조 강화를 통한 비핵화 해법을 타진하는 상황에서 이들 연대가 공고해진다면 정부의 외교력을 넘어서는 거대 대결 구도에 북핵 문제가 흡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통령실은 3일 김 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첫 다자외교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대한 평가를 아끼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전승절 동향을 지켜보고 있으며 아직 별도 입장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북한의 방중 대표단 구성 등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북한이 러시아를 넘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본격화하는 건 대통령실로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북·중·러 밀착이 가속화할수록 북핵 문제에 대한 정부 주도권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최근 전승절 개최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를 열어 신냉전 구도가 굳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한편으로 대중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 구상을 공유하고 신뢰 관계를 조성한 바 있다. 중국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한 김 위원장, 이 대통령의 구상을 청취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평화 구축 문제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우리 평화 기조에 제동이 걸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북한과의 친밀함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에 따라 언제든 대화의 불씨는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오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80차 유엔총회에서 단계적 비핵화 구상을 비롯한 우리 정부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의 ‘빅딜’ 대신 국제 공조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할 전망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전승절 열병식 및 환영 오찬에 참석해 김 위원장과 악수하며 “(2018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봅니다”라고 했다고 동행한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네”라는 짧은 대답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 의장에게 김 위원장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면 좋겠는지 물었다. 우 의장은 “남북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가기를 희망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우 의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당부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