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급성 가뭄

입력 2025-09-04 00:40

미국 텍사스 오클라호마 켄터키주의 남부 대평원이 2000년에 겪은 가뭄은 예년과 좀 달랐다. 봄철만 해도 평년 강수량을 보였는데, 6~7월 열돔 현상이 나타나 37도 이상 고온이 이어지더니 불과 몇 주 만에 토양 수분이 고갈되며 가뭄 상태로 접어들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마른 날씨’인 가뭄의 정의에서 ‘오랫동안’이 생략된 가뭄을 처음 포착한 기상학계는 이를 분석한 2002년 논문에 ‘flash drought’란 용어를 썼다. ‘flash flood(갑작스러운 홍수)’에서 차용한 말로, 순식간에 악화되는 가뭄을 뜻한다. 급성 가뭄 또는 돌발 가뭄이라 번역되고 있다.

학술적으론 토양 수분과 강수량 등의 지표가 30일 안에 임계값 이하로 급락할 때 급성 가뭄으로 분류한다. 비가 내리지 않아 토양에 수분이 공급되지 않는 것을 넘어 토양이 머금고 있던 수분까지 급속히 말라버리는 것인데, 그렇게 만드는 요인은 폭염이다. 증발산, 즉 지표면 수분의 증발과 식물의 증산(수분을 흡수해 양분을 얻고 기체로 방출하는 과정)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폭염은 ‘대지의 제습기’와도 같다. 미국 곡창지대를 강타한 2000년 급성 가뭄은 42억 달러 재산 피해에 사망 140명의 인명 피해까지 낳았다. 이후 가뭄 패턴을 다시 들여다본 학계는 강수 부족에 의한 전형적 가뭄보다 폭염이 맞물린 급성 가뭄이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고, 회복이 더디며,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국내에서도 1982년 이후 가뭄 패턴을 분석한 논문이 몇 해 전 기상학회지에 실렸다. 1994년 2016년 2018년에 가장 강하고 오래 지속된 급성 가뭄이 있었는데, 모두 기록적 폭염이 나타난 해였다. 이 선례를 넘어선 극단적 상황을 지금 강릉이 겪고 있다. 기후변화에 폭염은 일상이 됐으니, 급성 가뭄도 연례행사로 닥칠 듯하다. 달라진 빗줄기에 도입한 극한호우 예보처럼 급성 가뭄 경보 체계가 필요해 보인다. ‘급성’이라 예측이 어렵지만, 2000년 난리를 겪은 미국은 2006년 통합가뭄정보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며 정확도를 높여가고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