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6시30분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의 한 강당. 초교파로 모인 장로 85명이 베이스와 바리톤의 중저음 위로 테너의 고음을 더하며 웅장한 화음을 만들고 있었다. 소리가 절정에 달했을 때 15년째 지휘봉을 잡아 온 김성균(78·신암교회) 장로가 손을 저어 잠시 음악을 멈췄다.
김 장로는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을 부르는 단원들을 향해 “듣는 이가 이 노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면 노래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원들의 시선이 지휘자에게 다시 모였고 그의 손짓에 따라 다시 합창이 시작됐다. 각기 다른 교단에서 신앙을 다져 온 85개의 목소리가 같은 선율 위에서 하나의 소리로 어우러졌다.
이날 시작된 이들의 새벽 연습은 오는 11월 6일 서울 영등포구 KBS홀에서 열리는 제19회 정기연주회를 향한 첫걸음이다. 초교파 연합으로 구성된 서울장로성가단의 연습은 공연 전까지 매주 수요일 계속된다.
올해 단원들이 빚어내는 ‘살아있는 소리’는 재난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과 그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사업비 모금에 사용된다. 목표는 1000만원이다. 정기연주회 준비위원장 김덕형(73·종교교회) 장로는 “국민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희생을 함께 기억하고 남겨진 동료와 가족들에게 용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헌신은 북한 어린이와 시각장애인 등을 후원해 온 이 합창단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KBS합창단 및 국가사절단 지휘자 등을 역임한 김성균 장로의 지도 아래 단원들은 “아마추어지만 100% 프로 정신을 가진다”는 자부심으로 고된 훈련을 기꺼이 감당한다. 연주회마다 20곡에 달하는 악보를 통째로 외우는 것은 이들만의 철칙이다. 김 장로는 “악보를 보지 않아야 오직 지휘자의 손끝과 가사의 의미에만 집중해 영적인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4년 동안 성가단에 몸담은 강원호(91·미아중앙교회) 장로는 “단원으로 매주 찬양 연습을 하면서 나 자신이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느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그렇게 성장한 내가 찬양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현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3년차 막내 공태용(53·신림교회) 장로는 그런 선배들을 보며 합창의 본질을 배운다. 그는 “합창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비로소 하나의 소리가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서울장로성가단은 1987년 교파의 벽을 넘어 함께 찬양하자는 마음으로 창단했다.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자신을 낮추고 엄격한 훈련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빚어 사회의 아픈 곳을 향해 노래하면서 38년 역사로 이어졌다. 이번 정기연주회에는 한국소방기독선교합창단도 함께 무대에 올라 추모의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