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와이를 지상 낙원이라 했던가. 그곳은 내겐 또 다른 지옥문이 열린 곳이었다. 1980년대 후반 나는 음악 투어를 계기로 하와이에 발을 디뎠다. 아끼는 친구가 공연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내가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환경도 세심히 준비해 주었다. 연주를 다시 시작하면서 마음 한구석 살아보려는 의지도 되살아났다. 노래와 피아노 연주에도 생기가 돌았다. 무대 위에서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나는 오랜만에 무너진 자신을 다시 추슬러 일어서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하와이에서의 생활은 처음엔 순탄해 보였다. 클럽 무대 위 나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팬들이 생겼고, 그들의 응원은 실제 큰 힘이 됐다. 하와이에서 받은 사랑은 유난히 많았다. 공연마다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가 이어지고 값비싼 선물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마약의 유혹이 나를 무너뜨려 갔다. 내가 마약에 다시 빠져들자 사람들은 하나둘 떠났다. 그들을 실망시킨 죄책감이 깊었지만 약에 대한 갈망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결국 나를 위하던 이들조차 손을 놓았다. 모든 관계가 끊겼고 내 곁에는 오직 마약만 남았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비극을 목격했다. 재산과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는 사람들, 약 한 봉지를 얻기 위해 고급 승용차를 내던지는 이들, 마약에 삶이 무너진 젊은 여성들의 비참한 죽음…. 하와이의 화려한 관광지 모습 이면에는 마약으로 파괴된 수많은 영혼이 있었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중독에 빠졌고, 홀로 숨어 약을 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중독과 함께 찾아오는 자살 충동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와이키키의 고층 건물 옥상 난간에 서서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수차례 몰려왔다. 실제로 뛰어내리려던 순간 전화벨이 울려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적도 있었다. 마약으로 망가진 삶은 나를 죽음의 문턱으로 계속해서 몰아갔다. ‘나는 언제쯤 끝날까, 죽음만이 답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정적으로 원주민 마약 딜러에게 돈을 지불하지 못하며 생명이 위협받게 됐다. 더는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된 난 또다시 도망쳐야 했다. 떠나기로 결심한 날 와이키키 해변 노을 아래서 나는 밤새 울었다. 모두가 즐기기 위해 찾는 그곳에서 나는 절망을 마주하며 부모님을 간절히 불렀다. “엄마, 아빠, 나 어떻게 해요.”
셋째 형의 도움으로 급히 항공권을 마련해 야반도주하듯 공항으로 향했다. 그때가 1988년, 스물아홉 살 때다. 내 모습은 이미 많이 망가져 있었다. 체중은 눈에 띄게 줄었고 흐려진 의식에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다. 공항에서 한참을 울었다. 이렇게 비참한 몰골로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좋은 소식 하나 없이, 실패와 절망만 안고 가게 된 내 두 발이 그렇게 무겁고 수치스러울 수 없었다. 그렇게 눈물 속에서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