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K뮤지컬,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입력 2025-09-04 00:33

한국에서 뮤지컬의 출발점은 1966년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다. 내년이면 60주년을 맞게 된다. 뮤지컬의 종주국인 미국이나 영국과 비교하면 짧은 역사지만, 한국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뮤지컬에서도 압축 성장을 해왔다.

특히 21세기 들어 뮤지컬 산업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뮤지컬이 한국 공연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주류가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티켓 판매액 기준으로 4651억원이었는데, 대중음악을 제외한 공연 시장 6968억원의 68%에 달했다. 시장의 성장세와 산업적 가치를 인정받은 뮤지컬은 2022년 공연법 개정을 통해 연극의 하위 장르에서 독립 장르로 분리됐다.

그런가 하면 2010년대 이후 K뮤지컬의 해외 진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서 K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이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이뤄지는 한편 한국 창작진과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뮤지컬을 공동 제작·투자·유통하는 협력 생태계인 ‘원 아시아 마켓’이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또한 한국 뮤지컬계는 수년 전부터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의 문도 두드려 왔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제작한 ‘위대한 개츠비’와 박천휴 작가가 대본을 쓴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 사례는 대표적이다.

특히 ‘어쩌면 해피엔딩’은 올해 미국 공연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6관왕을 차지하며 한국에 큰 기쁨을 안겨줬다. K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는 요즘 한국 뮤지컬계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똘똘 뭉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뮤지컬산업진흥법 제정 촉구다. 뮤지컬산업진흥법은 뮤지컬 관련 지식재산권 보호 시책, 국내 창작뮤지컬 수출 및 인재 육성, 지역 뮤지컬 산업 지원 등 국가 차원의 시책을 수립하고 전담기관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상태다.

지난 2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한국뮤지컬협회 주최 ‘뮤지컬포럼 2025’는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심사 중인 뮤지컬산업진흥법의 국회 통과를 한목소리로 촉구하는 자리였다. 또한 이날 포럼에서는 뮤지컬 시장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는 대극장 창작 뮤지컬 제작 활성화를 위해 ‘신작 창작 뮤지컬 대극장 쿼터제’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특히 이날 포럼에는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토니상을 받은 박 작가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 작가는 합리적인 티켓 가격을 통한 대중의 뮤지컬 접근성 강화와 함께 뮤지컬 산업에서 지역 공연장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미국에서 브로드웨이에 올라가는 작품은 대부분 개발 과정 중 지역 극장에서 트라이아웃(Tryout)을 가진다. 시범공연이라는 뜻의 트라이아웃은 본공연에 앞서 실제 관객을 대상으로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 반응과 피드백을 수집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검증 과정을 통해 브로드웨이 공연의 성공 확률을 높이게 된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브로드웨이에 오기 전 애틀랜타 얼라이언스 시어터에서 트라이아웃을 거쳤다. 애틀랜타 얼라이언스 시어터는 뮤지컬 ‘아이다’ ‘더 프롬’ 등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트라이아웃이 이뤄진 공연장이다. 박 작가의 지적처럼 국내에서도 지역 문예회관들이 트라이아웃 공연장 역할을 맡는다면 지역 공연계 활성화를 통해 서울 중심의 공연 생태계를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