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교회는 이에 대응하는 윤리적 지침과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10대 자녀가 챗GPT와 정서적 교류를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학부모가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이 보도됐다.
교계 단체와 주요 교단은 AI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신학적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기독교학회(회장 황덕형)는 올해 초 ‘AI 시대를 바라보는 한국기독교학회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명시하는 12개 준칙으로 구성됐다. 성명서는 ‘AI를 활용 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것’이라는 원칙을 명시하며 저작물과 저작권, 개인정보와 관련된 문제들도 다루고 있다.
한동대가 추진 중인 AI 윤리 가이드라인 개발 작업은 기독교 대학으로서 신학적 기준과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목적이 어떻게 실제 AI 개발과 활용에 반영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사례다. 김재효 한동대 교수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동대가 국내외 기독대학 및 단체와 연합해 ‘복음주의적 AI 데이터 연합’을 추진 중”이라며 “개별 교단과 학교, 교회가 신뢰할 수 있는 신학 자료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서구 교회에서는 우리보다 빨리 AI에 대한 대응을 시작했다. 미국 남침례교 공공정책 부서인 윤리및종교자유위원회(ERLC)는 6년 전 ‘인공지능에 대한 복음주의적 원칙’을 선언문 형태로 발표했다(그래픽 참조). 미국장로교(PCUSA)도 2년 전 ‘인공지능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연합감리교회(UMC)는 지난해 AI가 제기하는 신학적 목회적 문제를 파악하고 전통 사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 연구하는 실무조직을 만들었다. 유럽교회협의회(CEC) 역시 2019년 ‘신뢰할 수 있는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한국교회 내에서도 AI 윤리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확산 중이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단계엔 이르지 못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김영걸 목사)은 지난해 국내 교단 중 처음으로 ‘인공지능 시대, 목회자 윤리 선언’을 발표했다. 일반 사회를 향한 인공지능 윤리 선언과 목회자를 위한 윤리 지침을 제시한 예장통합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술의 등장으로 윤리적 통제와 감시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사회와 교회를 향한 AI 개발과 활용에 윤리 지침 도입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강성호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딥러닝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2010년대 후반부터 AI 윤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며 “미국 교회 대부분 교단은 교단별 AI 윤리 지침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지침에 따라 AI 윤리를 지키지 않은 목회자의 경우 처벌하는 규정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교단별 지침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강 교수는 실효성과 강제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기독교학회 등 학술단체가 발표하는 선언서도 의미있지만 이것을 교단 지침으로 정하지 않으면 권고 차원에서 그치기 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지침을 세워 AI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영혼의 치유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며 입을 모았다.
정태기 치유상담대학원대 이사장은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가져온 편리함을 인정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관계와 영적 만남의 본질적 가치를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AI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현실”이라면서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가진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변화되고 치유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AI에 무분별하게 의존하는 버릇이 들면 오히려 사람이 기계처럼 변한다. AI가 주는 편리함에만 기대지 않고 AI를 생각의 훈련 도구로 삼아 올바르게 활용하는 리터러시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목회자가 마주할 가장 큰 문제는 직접 경험의 종말”이라고 지적하며 “목회자의 영적 성장과 통찰력, 묵상의 깊이가 약해지면 영적 인간을 치유하는 참된 미덕을 키우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윤서 김아영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