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아이들에 방 하나 내줬을 뿐인데… ‘하나님의 집’ 되다

입력 2025-09-06 03:00
원주충정교회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강소연

“아이들이 낯선 남의 집이 아니라 하나님 집에 온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우리 가족은 눈물이 났습니다. 작은 방 하나 내어드린 것뿐인데 그 순간 우리 집이 선교지가 되었던 거죠.”

지장근(왼쪽 맨 앞) 집사가 지난달 1일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홈스테이에 참여한 아이들과 셀카를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원주충정교회 제공

강원도 원주충정교회(최규명 목사)의 지장근(54) 안수집사는 지난달 1일부터 이틀간 교회에서 열린 ‘스파크 어린이 성령캠프’ 참여를 위해 인천에서 온 어린이 두 명과 그 부모를 자신의 집에서 재웠다. 교회 캠프 참여를 위해 찾아온 전국의 미자립교회 아이들에게 가정의 문을 활짝 열어 먹고 재우는 ‘홈스테이 사역’의 일환이었다.

친척들과의 교류도 예전처럼 잦지 않은 시대에 전혀 모르는 ‘남의 집 아이’를 내 집에 들이는 건 낯설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교회에선 자연스럽다. 올여름만 100여 가정이 나서서 전국 25개 교회에서 온 400여명의 아이들을 맞이했다. 홈스테이 사역을 한 번 하고 마는 경우도 드물다. 환대받은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환대하는 기쁨’을 경험했다는 이들은 “매년 여름 아이들을 기다리게 된다”고 고백했다.

가정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의 환대’

지난달 2일 원주충정교회에서 열린 ‘스파크 어린이 성령캠프’ 참가자들의 모습. 원주충정교회 제공

스파크 어린이 성령캠프는 원주충정교회가 매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다음세대 축제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이 캠프는 온라인 접수 시작 1분 만에 마감될 만큼 인기가 높다. 비결은 성도들의 헌신이다. 주방 의료 청소 안내 간식 중보기도까지 200여명의 성도가 전원 여름 캠프에 참여하는 건 기본이고, 캠프 전 52일간 릴레이 금식기도를 진행하는 등 온 교회가 마음을 모은다.

운영비 전액을 성도들이 헌금으로 충당하기에 참가비도 없다. 무엇보다 특별한 건 홈스테이 사역이다. 전국의 미자립교회 아이들을 위해 캠프 문을 활짝 여는데, 이 아이들을 먹고 재우는 역할을 각 성도 가정이 맡는 것이다.

이런 캠프가 이뤄지게 된 건 최규명 목사의 오랜 꿈 영향이다. 20년 넘게 한국어린이전도협회에서 사역하다 13년 전 원주충정교회에 부임한 그는 당시 30명 남짓한 아동부를 두고 “받는 교회가 아니라 주는 교회가 되자”는 비전을 선포했다. 실제 지금은 주일학교 학생만 300명, 교사 110여명에 이르는 교회로 10배 성장했다.

하지만 여름 캠프 때마다 형편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늘 마음에 걸렸다. 최 목사는 “20년 전부터 미자립교회, 작은 교회 아이들을 마음에 품었다”면서 “담임목사가 되면 꼭 무료 어린이 캠프를 하고 싶다는 소원을 성도들과 함께 이루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원주 지역에 있는 교회나 주일학교 학생이 30명 이상인 큰 교회는 이 캠프 참가 대상이 아니다. 작은 교회 아이들이 ‘믿음의 추억’을 쌓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매년 시설관리부 청결부 미화부 등 다양한 역할로 캠프를 섬겨온 이재환(61) 안수집사는 “‘올해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하게 되고, 그 기다림이 삶의 기쁨이 된다”며 “어른보다 더 뜨겁게 믿음을 고백하는 아이들을 보며, 다음세대를 살리는 길이 바로 여기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아이들 맞을 준비 자체가 예배

아이들을 교회 강당이나 별도의 숙박 시설이 아닌 성도 가정에서 머물게 한 건 단순 비용이나 공간 마련 때문만은 아니다. 각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하자는 의도다. 자신의 집을 열어 아이들을 맞이해 본 성도들은 그 순간 자신의 신앙과 삶이 복음 앞에 새롭게 세워지는 은혜를 체험한다.

지 집사 가족은 최근 5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아이들을 맞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과 처음 집에 온 아이들이 처음엔 어색하다가도 곧 친근하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다고 했다. 올해도 지 집사 가정에서 홈스테이 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장에서 난센스 퀴즈 책을 꺼내 지 집사의 딸들과 함께 퀴즈를 풀며 웃음을 나누었다. 지 집사는 “마치 오래 알던 친구처럼 금세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심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 집사 본인은 청년부 부장과 셀 모임 리더와 찬양팀원을, 아내와 세 자녀도 각각 교사와 찬양팀 사역을 감당하는 ‘온 가족 사역자’ 집인데도 홈스테이 사역은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지 집사는 “매년 아이들이 우리 집에 새로 들어오는 순간 ‘이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을 다시 하게 된다”며 “단순히 방 한 칸 치우고 간식을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 가정을 다스리시는 은혜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오기 전 가족이 함께 청소하며 기도를 드린다. 그는 “그 준비가 곧 예배”라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손님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들을 청소한다”고 덧붙였다.

짧지만 깊은 ‘가족 같은’ 홈스테이

남유미(오른쪽 맨 앞) 집사가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과 ‘엄지 척’ 포즈로 기념촬영 하는 모습. 원주충정교회 제공

양광용(41) 남유미(40) 집사 부부는 올해로 세 번째 홈스테이에 참여했다. 이들은 세 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이지만 교회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캠프의 홈스테이 사역을 보고 2018년 원주 충정교회 등록을 결심했다. 남 집사는 “교회 성도들이 가정의 문을 열어 미자립교회 아이들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행사가 아닌 진정한 마음이 담긴 섬김이라는 게 느껴져 우리도 이 교회에 뿌리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집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먹이며 함께하는 하루는 짧지만 깊었다. 교회에서 교회 아이들을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남 집사는 “함께 기도하며 사진을 남기던 순간 마치 오래 함께한 가족 같았다”며 웃었다. 개인적인 은혜도 컸다.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27세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남 집사는 “아이들을 품는 시간이 곧 내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됐다. 하나님이 ‘너도 태초부터 나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홈스테이 사역이 예수님의 식탁 교제 같다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언제든 문을 열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룻밤 잠자리, 작은 간식의 나눔이지만 그 순간을 위해 긴 시간 기도하며 준비한다”며 “나의 공간 경계를 허물고 상대를 환대하는 것은 주님이 막힌 담을 허무신 사건과 닮은 것 같다”고 고백했다.

아파트까지 마련한 헌신

전경희 집사 자택 홈스테이에 참여한 이들이 함께 야식을 즐기기 전 기도하고 있다. 원주충정교회 제공

전경희(62) 집사는 홈스테이에 동참하려 아예 아파트를 마련했다. 전 집사의 원래 집은 경기도 광명인데, 남편이 교회 찬양대 지휘를 맡게 되면서 원주까지 오갈 일이 고민이 되던 차였다.

마침 캠프를 위한 주일예배를 인도하면서 “아이들이 교회 바닥이나 숙박업소가 아니라 성도 가정에서 따뜻하게 머물 수 있어야 한다”는 최규명 목사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전 집사는 결국 지난해 원주에 집을 구했다. 그는 “(캠프에 온) 아이들이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피자와 달콤한 과일을 내어 줬다. 후식으로 여러 종류 아이스크림을 두고 골라 먹으라 했더니 아이들이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뛰며 좋아하더라.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벅찼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작은 학용품과 간식이 담긴 선물에도 연신 “신난다” “너무 감사하다”며 기뻐했다. “공책을 주셔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감사를 표한 아이도 있었다.

전 집사는 그러나 처음엔 낯선 사람들에게 안방까지 내어주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웃고 새벽까지 대화 나누며 “예수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이미 형제자매”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직접 쓴 편지에 “집에서 너무 행복했어요” “내년에도 꼭 다시 오고 싶어요”라고 적었다.

전 집사는 홈스테이를 “사랑의 대물림”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홈스테이를 제공한 가정은 아이들의 순수한 믿음과 사랑을 직접 경험하며 이웃사랑의 기쁨과 감사를 누리고, 아이들은 자라 또 다른 곳에서 사랑을 흘려보낼 것입니다. 결국 이 사역은 교회 공동체를 단단히 세우고 다음세대가 시대를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게 할 것입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