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미국발 관세 폭풍, 중국산 전기차 공습,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하이브리드차 급증 등 다양한 이슈가 산재해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장을 만나 자동차업계의 현안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었다. 강 회장은 미래차 전환 전략, 국내 부품사 경쟁력 확보 방안, 정책 과제 등을 짚으며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했다. 인터뷰에 앞서 한국 자동차업계를 대표하는 강 회장에게 어떤 차를 타는지 물었더니 “제네시스 GV70을 탄다”고 했다.
-미국의 15% 관세 부과와 정부 대응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만약 미국이 25% 관세를 유지했다면 한국 자동차산업에 큰 부담이 생겼을 거다. 이번 협상으로 15%로 낮아지면서 불확실성이 줄었고 다른 국가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대응한 점은 업계에서도 환영할 만하다. 다만 관세 적용 시점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조속한 시행을 바라고 있다.”
-관세가 국내 완성차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올해 상반기 대미 자동차 수출이 16.8% 줄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 부담과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관세 부담 완화, 제품 경쟁력 강화,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대응하려고 한다. 북미 외에 유럽·동남아·중동 시장도 확대해야 한다.”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면서 국내 공장 가동률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지 투자와 생산 확대는 불가피하다.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국내 생산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전환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는 국내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부품사와 연계한 고부가가치 차량 생산도 강화할 것이다. 동시에 내수 활성화를 통해 국내 산업 생태계와 고용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기아의 북미 현지 전략에 대한 평가는.
“현대차·기아는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을 통해 생산능력을 최대 120만대까지 확대했다. 이곳에서 아이오닉5, 아이오닉9 같은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선제적 투자와 생산 설비 확충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전기차 세액공제 조기 종료 등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해외 생산 확대가 국내 부품사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경쟁력 있는 부품사는 해외 동반 진출로 거래처를 넓히고 현지 공급망에 편입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 부품사는 매출 감소 우려가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생산 활성화와 정책금융 지원이 필요하다. 부품사 협업 확대와 품질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다.”
-내수 시장에서 국산차 점유율이 줄고 수입차 비중이 늘고 있는 이유는.
“테슬라, BYD(비야디) 같은 가격 경쟁력 있는 수입 전기차가 점유율을 키우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기 승용차 신규 등록에서 수입차 비중은 40.3%, 그중 테슬라 점유율은 59.5%에 달했다. 특히 테슬라는 2023년 하반기부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산 전기차를 2000만원 이상 저렴하게 국내 출시했다. 테슬라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원산지 리스크를 상쇄했음을 시사한다.”
-중국산 전기차 급부상에 대한 대응 전략은.
“BYD에 이어 지커, 창안, 샤오펑 등 주요 중국 브랜드의 국내 진출이 가시화하고 있어 국내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제조사들은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고용 기여도와 연계한 보조금, 세제 지원, 생산세액 공제 확대 등이 필요하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했고 대신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급증한 것도 눈에 띈다.
“주요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 충전 인프라 제약, 경기 둔화가 겹친 결과라고 본다. 반대로 충전 부담이 적은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크게 늘었다.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핵심 파워트레인으로 당분간 시장 수요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어떤 정책을 건의했나.
“내수 활성화를 위한 개별소비세 감면,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미래차 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 확대를 건의했다. 실효성 있는 정책 반영과 예산 확보가 산업 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이다. 자동차산업과 환경·에너지 정책의 조화도 고려하고 있다.”
-2022년 취임해 오는 10월 18일이면 임기가 끝난다. 남은 목표는.
“국내 자동차산업 경쟁력 강화와 미래차 전환에 힘을 더 쏟고 싶다. 친환경차 전환, 부품사 협력 강화 등 업계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는 것이 목표다.”
-임기 중 협회 이름도 바꿨다.
“자동차산업은 단순히 이동 수단을 만드는 제조업에서 모빌리티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를 반영해 협회 이름을 자동차산업협회에서 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로 바꿨다. 예전에는 자동차가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자율주행·전동화·전장화가 결합해 하드웨어 중심이 아닌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아우르는 새로운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협회의 정체성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