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 속 이 문장은 다양한 맥락에 활용된다. 나는 ‘바람’의 자리에 언제나 한 교회의 이름을 넣는다. 열살 가을에 잠실로 이사 가서 15년 동안 다닌 교회. 신앙 정체성을 형성한 그 교회 금요기도회에 강사로 초청을 받았다. 얼떨떨하게 수락하고 나니 부담감이 몰려왔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높임 받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했다. 징글징글한 더위에 지쳐 거절할 타이밍을 놓쳤다. 디데이 1주 전 여전히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 선후배들의 연락을 받았다. 각자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고자 애쓰는 그들의 소식을 들으며 결심했다. “왔노라. 보았노라. 웃기노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교우들을 웃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도드렸다. 개그 콘셉트에 맞게 원고를 대폭 수정했다. 드디어 디데이. 강단에 올라 점잖은 교우님들의 실소를 들으니 보람찼다. 나를 웃기는 아주머니로 변신시키신 예수님의 은혜가 크고 놀라웠다. 이 은혜가 쭉 이어져 웃기는 할머니가 될 수 있기를. 우리가 웃으면 하나님도 기뻐하시니까.
정혜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