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사는 하루하루도 누군가에겐 영감이자 자극”

입력 2025-09-05 00:07
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허휘수(왼쪽)와 김은하. 유튜브 채널 ‘김은하와허휘수’ 운영자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메인 콘텐츠’를 “30대 여성들이 만드는 일상 콘텐츠”라고 소개했다. 이병주 기자

매일 출근과 퇴근이 반복된다. 사이사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은 필수다. 살이 찌면 친구와 다이어트 내기를 한다. 주말엔 당일치기 여행을, 이따금 찾아오는 휴가 땐 멀리 여행을 떠난다. 특별할 것 없는 모두의 일상이다.

유튜브 채널 ‘김은하와허휘수’는 이런 일상을 공유한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콘텐츠로 만들며 고민도 많았다.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일상을 담는 것으로 치열한 유튜버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김은하(32)와 허휘수(32)는 카메라 앞에서 중심을 잡고자 부단히 노력한 끝에 그들의 필요성을 증명해냈다.

채널 ‘김은하와허휘수’의 소개 글은 당차다. ‘이름 석 자 걸고 시작하는 스트릿 유튜버’. 이런 문구에서 느껴지듯 영상은 김은하와 허휘수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프리랜서 PD로 일하는 직장인 김은하의 모습을 비추기도 하고, 에세이 작가인 허휘수의 모습을 전하기도 한다. 주말농장을 함께 가꾸거나 친구들과 같이 간 수영장에서의 추억도 공유한다. 그런 이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재미있게 산다” “부럽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고 화답한다.

2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중견’ 채널이지만 명확하게 성격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김은하는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채널의 ‘메인 콘텐츠’를 묻는 말에 “잘 먹고 잘사는 30대 여성들의 일상 콘텐츠”라고 답했다.

허휘수는 자신들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걸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알게 됐다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매일을 콘텐츠로 만들었기에 ‘잘 먹고 잘산다’고 의식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걸 시청자 반응으로 알았어요.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죠.”

PD·자영업자…‘N잡러’ 된 이유는

숙명여대를 졸업한 김은하와 허휘수는 N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정규직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할 것이라는 한국 사회의 틀 밖에 있다. 대신 프리랜서 삶을 즐긴다.

우선 채널 대표인 허휘수는 전업 유튜버이면서 에세이 3권을 출간한 작가다. 김은하와 함께 콘텐츠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한다. 광고주 대응이나 재무관리도 대표인 허휘수의 몫이다. “돈이 없을 때 불안해요. 하지만 어딘가 소속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불안해하던 시기는 지났어요. 제 경력을 증명할 공인된 무언가가 없다는 게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대학원 진학으로 그 불안감을 해소했어요(웃음).” 허휘수는 숙대 나노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프랑스문화매니지먼트 과정을 수료했다.

김은하는 ‘5잡러’다. KBS 예능국의 ‘StudioK’에서 웹 예능 ‘아이돌 인간극장’을 만드는 PD이면서 합정과 용산에 있는 바 ‘스튜디오 4bpm’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기도 하다. 방송 프로그램의 임시자막(가자막)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MBC에도 출근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에세이도 출간했지만 김은하는 일회성 출간으로 ‘작가’라는 타이틀은 달 수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구독자들은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김은하를 ‘헤르미우나(헤르미온느+김은하의 별명 ‘우나’)’라고 부른다.

김은하는 자신을 불안이 많은 성격이라고 소개했다. 안정되고 싶은 욕구가 커 ‘5잡러’가 됐다는 설명이다. “어딘가 소속돼도 불안하다고 생각해요. 정년보장이라고 하지만 정말 보장될까 하는 불신도 있고요. 한 가지 직업을 가져도 불안할 거라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불안하고 싶다는 마음이죠.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불안감이 낮아지거든요. 저도 정규직이 아닌 삶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초반에는 불안했어요. 하지만 제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서 확신이 생겼어요.”

‘아파트 이사’로 해결한 미래 걱정

서울로 상경한 지방 청년은 주로 기숙사 원룸 고시원 등에 거주한다. 학생도, 직장인도 방의 크기만 달라질 뿐 주거 환경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빌라 오피스텔 등으로 대표되는 비(非)아파트에서 불안정한 주거를 이어간다. 아파트 ‘입성’은 결혼 후에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김은하와 허휘수는 이 틀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이미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김은하는 방 3개인 아파트에서 룸메이트와 산다. 입주할 때 2명이던 룸메이트는 최근 아는 동생이 합류하며 3명이 됐다. 허휘수도 1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방 3개짜리 아파트에 거주한다.

김은하는 아파트에 살게 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룸메이트 3명과 투룸 빌라에 살 때는 막연하게 다가왔던 ‘아파트’라는 꿈이 현실이 되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아파트라는 거주 형태가 눈앞에 보이지 않았어요. 언제 집을 사고, 언제 안정될지 불안했죠. 하지만 이제 아파트로 이사하니까 매수도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불안하지 않아요.”

허휘수도 김은하의 주거 방식에 영감을 받아 친구를 설득했다. “각자의 방이 하나씩 있고 남는 방은 서재로 쓰고 있어요. 공간이 크다 보니 서로 신경을 많이 안 쓸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게 안정감을 줘요.”

7년간 이어온 우정, 그 비결은


노동 형태도, 주거 형태도 틀에서 벗어난 김은하와 허휘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건 남들과 다르지 않다. ‘잘 먹고 잘사는 것’. 그들이 생각하는 ‘잘사는 것’에는 우정을 이어가는 것도 포함된다.

김은하와 허휘수는 “당연히 불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갈등이 불거질 땐 단절 대신 마주하기를 택했다. 때로는 밉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았다. 김은하는 “유튜브 채널과 저희의 관계를 두고 고르라고 하면 저희는 관계를 고를 사람들이에요”라며 돈독함을 과시했다.

‘잘사는 것’에선 구독자를 빼놓을 수 없다. 슬럼프를 함께 거쳐온 구독자들과의 관계는 남다르다. 채널은 개설 8년차가 돼서야 구독자 20만명을 넘어섰다. 허휘수는 “은하랑 사이가 안 좋을 때 엄마한테 유튜브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럼 보던 사람들이 어떡해’라고 하시더군요. 관계가 끈끈하다는 게 밖에서도 보인다는 걸 그때 알았죠. 구독자 개개인을 아는 건 아니지만 형태 없이 느껴지는 마음이 있어요. 믿음을 저버리기 싫은 맘이 드는 고마운 분들이죠”라고 말했다.

늘지 않는 구독자를 보며 김은하는 오기로 유튜브에 임한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구독자 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신 재미가 우선이다. “여러 직업 중 매해 우선순위가 달라요. 올해는 ‘김은하와허휘수’ 채널이 최우선이에요. 이전에는 영상에 반응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성장하고 있잖아요. 그게 재밌어요. 자연스럽게 영상도 더 재밌어지고 보는 분들도 즐겁고 저도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어요.”

누군가의 믿음을 등에 업고 자신의 길을 달려가는 이들은 40대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대가 크다. 김은하는 “40대에는 일하는 시간을 줄일 거예요. 집도 보유하고 있겠죠. 40대에는 뭐가 됐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했다. 허휘수도 “철인 3종 경기를 나가는 할머니가 꿈”이라며 “건강하게 40대를 맞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