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 견제를 포함한 더 넓은 차원의 안보 임무로 확장하려는 ‘동명 현대화’ 개념은 지난 몇 년간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꾸준히 등장했다. 주한미군의 구조와 지휘체계 개편 문제는 워싱턴 정가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됐다. 당시 논의된 현대화의 방향성은 전통적인 군사동맹 방식을 다자 연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기조는 점차 거래적 관계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비용 분담을 강조하며 한·미동맹을 한국이 더 많은 방위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현대화하고자 했다.
2002년에도 등장한 ‘현대화’
동맹을 현대화해 나가자는 언급이 처음 등장한 건 2002년 제34차 SCM 공동성명문으로 확인된다. 당시 성명문에는 “양 장관은 서울 내 주한미군의 이전, 연합군사능력 증강, 군사임무 전환 및 주한미군 재배치 등에 대한 합의사항을 검토했다”며 “이러한 구상들이 완전히 이행되면 한·미동맹이 현대화되고 강화될 것”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구성, 역할을 변경한다는 의미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언급도 있다. 34차 성명문에는 “양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지속적으로 중요함을 재확인했다”고 서술됐다.
동맹 현대화는 이후에도 ‘동맹의 미래 구상’ 등의 유사한 표현으로 종종 SCM 성명문과 미 국방연구 보고서 등에 등장했다. 미 국방부가 정권 기조와 무관하게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국 방어에만 묶어둘 수 없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가져왔다는 의미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 견제 등 역내 안보 상황에 유연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도 꾸준히 진행돼 왔다.
동맹 현대화라는 표현이 공식 개념화돼 공동성명문에 등장한 건 2023년 55차 SCM에 담긴 ‘한·미동맹 국방비전’이다. 이 문서에서는 향후 30년간 양국 국방 협력의 공동 비전을 서술하며 확장 억제, 동맹 역량 현대화, 동맹 연계 강화를 핵심축으로 제시했다. 2024년 56차 SCM에서도 과학기술 협력을 통한 동맹 역량 현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략동맹이라는 개념은 이명박정부에서 공식화됐으며, 이후 박근혜정부에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수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재인정부에서 미래지향적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표현이 바뀌었다”며 “한반도 방위에서 중국 견제로 방향을 트는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언급된 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의 구조·지휘체계 재편을 의미했다. 2010년대 버락 오바마 정부가 구상한 현대화의 키워드는 미래지향적 전략동맹과 전시작전권 전환 준비로 압축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집권한 뒤 트럼프 1기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하게 비판했고, 다자적 협력에 기반한 동맹 관계의 회복을 강조했다. 트럼프 이전의 미 행정부는 국제 협력과 상호 이해에 기반한 동맹 강화에 주력했다. 이들의 동맹 전략은 신뢰를 토대로 한 다자 간 협력이었다.
트럼프식으로 재해석된 현대화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며 동맹 현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 동맹관과 맞물려 다른 방향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현대화 역시 주한미군 역할을 대중 견제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전략적 유연성 측면의 방향성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존의 다자적, 협력적 접근과 달리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비용 분담을 중시한다. 이전에는 현대화에서 한·미동맹의 군사적 결속력 강화와 전략적 협력이 강조됐다면, 트럼프정부는 비용 분담과 한국의 자주국방 강화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동맹 현대화를 두고 견해차나 갈등 조짐이 수면 위로 분출된 것도 이때부터다. 한·미동맹의 군사·안보 현안에서 비용 분담 문제가 의제로 부상했다. 구체적으로 확장 억제, 전작권 전환,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사드, 연합훈련 등 모든 사안에서 비용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트럼프정부가 제시하는 현대화에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통한 한국의 비용 부담 확대, 미국산 무기 구매, 주한미군 효율화 같은 재정·거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동맹 관계는 신뢰와 상호 보완성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지만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이 같은 동맹의 근본적 원칙이 훼손됐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직접적 이익만 중시하는 트럼프식 동맹론이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을 통한 다자 간 협정 내에서의 협력보다는 미국과 개별 국가 간 이익 중심의 협정을 추진하는 것도 전통적 개념의 동맹 방식이 변화된 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식 현대화를 군사적 기반 현대화에 더해 비용 분담 체계를 재정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북한 문제, 양안 충돌 가능성, 중동 전쟁 등 글로벌 안보 상황에서 다자 간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진단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식 현대화는 공간적 확장뿐만 아니라 비용적 확장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트럼프가 말하는 현대화는 한국군 역량 강화, 미국의 첨단 무기 구입,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압축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거래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이에 한국군의 국방력 증강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자율성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