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군은 저무는 시간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눈과 목화, 쌀 그리고 소금이 많아 사백(四白)의 고장이라 불렸다. 특히 소금과 함께 써 내려간 발자취는 매우 깊다.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갯벌의 경우 1000여년 전부터 한반도 최고의 소금 생산지였다. 소금산을 뜻하는 염산(鹽山)면과 하얀 산을 뜻하는 백수(白岫)읍과 같이 소금 관련 지명도 있다.
백수읍과 염산면에 있는 570㏊ 염전에서 매년 4만5000t의 천일염이 나온다. 전국에서 2번째로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 바다에서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차례차례 옮겨가며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에 증발시켜 천일염을 만든다. 영광 갯벌 천일염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서해 청정해역 칠산바다 바닷물과 오뉴월의 따듯한 햇볕과 4월부터 불어오는 북서풍 하늬바람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명품 소금이다. 칼슘과 칼륨, 마그네슘 등 미네랄 함량이 높은 양질의 천일염이다.
천일염은 보통 4월부터 10월까지 만들어지는데 품질의 우수성만큼이나 염전 풍경도 아름답다. 붉은 석양과 함께 작업하는 소금밭 일꾼의 모습은 마치 밀레의 대표작 ‘만종’을 연상케 한다. 과거 사진 촬영의 명소로 꼽힐 정도로 시선을 끌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고령화와 고된 노동강도로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점점 폐염전이 늘어나고 태양광·풍력 발전 용지로 바뀌고 있다.
일몰 명소로 꼽히는 곳은 백수읍 남쪽 염산면 두우리 백바위다. 하얀 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자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낙조 풍경을 선사한다. 흰 바위 무리가 바다로 향한 곳에는 송이도와 낙월도, 각이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송이도는 섬의 모양이 사람 귀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2003년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국내 아름다운 섬 100선에 뽑을 만큼 비경을 자랑한다. 송이도는 육지(향화도 항)에서 약 두 시간 가야 하는 꽤 먼 섬이지만 그만한 수고로움을 감수해도 될 만큼 매력적이다.
백바위 인근 송암리 일대에는 영백염전, 군유염전 등 천일염전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염산’이란 이름이 이곳에서 왔다. 소금밭 주변 갯벌에는 칠면초가 붉은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가면 백수해안도로다.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해안을 따라 16.8㎞를 가는 길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화려한 석양을 자랑하는 서해안 대표 드라이브 코스다. 백수는 99개의 봉우리가 소재한 지역이다. 백수해안도로에는 칠산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곳곳에 있다. 여기에 노을까지 더해지면 절경이 따로 없다.
해안도로 곁은 노을길이 함께한다. 바다 가까운 곳에서 걸으면서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2006년 국토해양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2011년 국토해양부의 제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노을전시관을 비롯해 다양한 펜션과 음식점 등이 있다.
해안가 산 중턱에 마련된 노을전망대는 일몰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노을전망대에는 괭이갈매기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괭이갈매기는 한번 만난 짝과 평생을 함께한다는 얘기가 있다. 노을전망대를 찾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랑과 백년해로를 기원하며 제작됐다고 한다.
노을전망대를 지나면 노을전시관이 나온다. 노을전시관은 세계 각국의 노을을 비교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 영상 등의 자료를 갖춘 곳이다. 1층은 노을체험관, 2층은 노을과학관으로 이뤄져 있다.
노을전시관 인근에는 노을종(마법의 종)도 있다. 한 번 치고 맥놀이(진동수가 약간 다른 두 개의 소리가 간섭을 일으켜 소리가 주기적으로 세어졌다 약해졌다 하는 현상)를 들으면 웃을 일이 생기고 두 번 치고 맥놀이를 만지면 사랑의 감정이 찾아들고 세 번 치고 맥놀이를 느끼면 행복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 길 뒤 산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 해안선과 나란한 능선의 산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구수산 능선길이다. 이름은 ‘칠산노을 치유숲길’.
해안도로 끝 북쪽 법성포에는 숲쟁이공원이 있다. ‘숲으로 된 성’이란 뜻으로 오랜 기간 성장해 온 나무들이 뒤엉켜 형성된 곳이다. 조선 중종 때 축조된 법성포 진성을 연장하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자연을 이용해 당시 포구와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 역할을 했다.
여행메모
백수해안도로 일대 펜션 집중… 굴비정식과 모싯잎 송편에 입이 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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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서 전남 영광의 백수해안도로나 염전·갯벌을 가려면 서해안 고속도로 영광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가장 편하다. 원흥교차로에서 함평·영광 방면으로 좌회전해 844번 지방도로로 올라선 뒤 신평교차로에서 22번 국도로 갈아타면 이내 법성포에 닿는다.
해안도로 인근 영화 ‘마파도’ 촬영지로 알려진 백암리 일대에 펜션이 몰려 있다. 백수해안도로 종점인 답동에도 드넓은 갯벌과 해안의 풍력발전기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펜션이 몇 개 있다.
영광에서 먹거리는 단연 굴비다. 법성포 식당들은 대부분 굴비와 함께 한정식을 차려 내는 ‘굴비정식’을 내놓는다. 영광의 특산품으로 모싯잎 송편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제25회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가 개최된다. ‘상사화랑 머물古! 상사호랑 찍GO’를 주제로 각종 체험형·체류형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올해는 방문객 편의를 위해 야간 셔틀버스도 처음 운영된다.
영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