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 석학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김영사)가 최근 주요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했다. 2019년 국내 출간돼 큰 인기를 끈 이 책이 역주행한 데는 최근 방한한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의 공이 크다. 그가 국내 한 방송에 출연해 이 책을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 3권 중 한 권으로 소개해서다.
‘사실충실성’이란 뜻의 팩트풀니스는 저자 로슬링이 만든 신조어다. 이 개념을 세계에 알린 이 책의 요지는 분명하다. ‘세상은 겉보기만큼 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30개국 사람들에게 설문하며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놀랍게도 모든 국가의 응답자 절반 이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터키 벨기에 멕시코에 이어 4위를 차지해 비관적 관점이 우세한 경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런 비관적 시각을 ‘거대 오해’라 부른다. 2017년을 기준으로 지난 20년간 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평균 기대수명도 1973년에 60세였으나 44년 뒤인 2017년에는 72세로 늘었다.
이런 희망찬 지표에도 세상은 여전히 나쁘다고 믿는다면 그건 인간 본연의 ‘부정 본능’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언론사는 긍정적 내용보다 부정적 소식을 더 자주, 무게감 있게 보도한다. 이유 없이 희망을 품는 순진한 낙관론자로 보일까 싶어 부정 본능에 기우는 경우도 꽤 된다. 저자는 부정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현 수준과 변화 방향을 구분’하고 ‘이전보다 나쁜 뉴스가 많다고 해서 고통이 더 큰 게 아니’며 ‘장밋빛 과거를 조심’하는 태도를 갖자고 한다. 상황이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는 당부다.
부정적 뉴스가 늘었다는 걸 달리 표현하면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그만큼 좋아져 나온 결과’일 수 있다. 인터넷 발달로 초연결사회를 사는 현대인은 매일 여러 매체에서 갖가지 문제를 마주한다. 저자는 매일 전달되는 자극적 소식을 보며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군’이란 생각이 든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자고 제안한다. “이 정도 (파급력의) 긍정적 발전이 있었다면 내가 이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까.”
그간 한국교회엔 ‘성장은 없고 하락만 남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숫자적 측면에선 일견 맞는 말이지만 분명히 개선된 항목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온라인 사역이 활성화됐고 1인 가구를 위한 목회적 지원 등 목회 다양성이 확장됐다. 건물 없이 사역하는 선교적 교회와 일과 학업, 결혼 등으로 한국에 온 이주민을 위한 교회도 늘고 있다. 최근 ‘부흥하는 교회 쇠퇴하는 교회’(규장)를 펴낸 기독교 비영리 연구기관 목회데이터연구소 등도 부정 본능에 반하는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 인식이 나쁘고 시설이 열악하며 성도 수가 적은 악조건 속에서도 부흥을 일궈내는 교회가 분명 있더라는 것이다. 부정 본능에서 벗어나 시대적 조류에 맞춰 본질을 강화하는 교회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의문은 남는다. 국내외에 현안이 산적한 건 엄연한 사실 아닌가. 이념으로 거칠게 양분된 우리 사회, 그 안에서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데도 ‘아직 희망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면 이 말을 떠올려보자. 미국 인권운동가인 오스틴 채닝 브라운이 회고록 ‘아임 스틸 히어’(바람이불어오는곳)에 적은 말이다. “희망은 있다. 다만 그늘에 있을 뿐.” 어둠 일색인 곳에도 희망은 항상 있으며, 이 희망이 결국 변화를 가져올 거란 의미다. 그늘에 가려진, 깊이 침잠해 있는 그 희망에 미래를 걸 때 세상은 점차 변할 것이다.
양민경 미션탐사부 차장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