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지노박 (9) 다시 손댄 마약… 영혼까지 쾌락의 깊은 어둠 속으로

입력 2025-09-04 03:04
뮤지션 지노박이 199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재즈클럽에서 연주하고 있다. 지노박 제공

이민자들의 꿈과 희망이 넘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LA). 그러나 스물여섯 살 시절 그곳에 살았던 내겐 화려함보단 아픔의 기억이 더 짙게 남은 도시다. 큰형이 이미 LA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나도 망설임 끝에 그곳으로 향했다. 형 가족과 함께 지내며 따뜻한 밥상 앞에서 웃고 대화하는 일상은 내게 잊었던 평온을 되찾아주었다.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다. 음악에도 다시 몰두할 수 있었다. 저녁이면 형과 차를 마시며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형이 내 재능을 칭찬할 때마다 어깨가 으쓱하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마침 그 시기는 한국의 톱스타들이 미주 공연을 다니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여러 공연에 세션으로 초청받았고 그 인연으로 라디오코리아 ‘원더풀 투나잇’ 고정 게스트로도 활동하게 됐다. 우연한 기회로 참여한 미스코리아 미주 행사 무대에서는 유명 가수와 배우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몇몇은 한국에서 함께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무엇보다 LA 명소 월턴 극장 무대에서 당대 최고 아티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순간엔 가슴은 벅차올랐고 눈앞에 탄탄대로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악마 같은 마약이 다시 내 곁을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친 몸을 달래고 긴장을 풀자는 작은 유혹이었다. 하지만 한 번 손을 대자 약속은 무너졌다. 공연은 펑크 났고 신뢰는 순식간에 산산이 깨졌다. 화려한 무대에서 번 돈은 술과 마약, 쾌락으로 흩어졌다. 나는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갔다. 결국 돈이 부족해지면서 마약 판매에까지 손대게 됐고 멕시코와 베트남 갱단들과 어울리며 범죄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작용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약에 취한 채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기도 했고 운전 도중 의식을 잃어 수많은 차들을 멈춰 세우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겪었다. 헛것에 쫓겨 숲에서 며칠씩 노숙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남은 음식을 먹으며 연명하다가 배탈로 고통에 시달린 적도 있다. 그럼에도 갈망은 멈추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거짓말로 돈을 빌리고, 인쇄된 가짜 돈으로 거래하려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수많은 친구가 내 눈앞에서 마약으로 죽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손을 떼지 못했다. 마약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내 영혼을 지배하는 어둠의 존재였다. 영적인 세계에서조차 그것은 악한 영의 도구가 되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 안에 죄의식은 점점 사라졌고 거짓과 폭력 속에 살며 사람이기를 포기해 갔다.

영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서류를 분실하고, 여권이나 면허증조차 없는 신분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늘 뒤를 돌아봐야 하는 불안, 가족에게조차 감출 수밖에 없었던 비밀, 끝없는 고립 속에서 나는 점점 무너져 갔다.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그때 내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음악 투어 일정이 잡힌 것이다. 목적지는 천혜의 휴양지, 하와이였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번엔 거기 가서 숨부터 쉬자.” 그렇게 또 한 번 도망치듯 짐을 꾸렸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