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AI 신뢰… 청소년 AI 중독·과잉의존 치명적”

입력 2025-09-03 00:21 수정 2025-09-03 00:21

한국 사회가 인공지능(AI) 대전환의 길목에서 자칫 ‘AI 과잉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콜센터 직원부터 개발자까지 AI의 일자리 위협이 거세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대비는 부족한 상황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AI 중독’을 막기 위해 최소한 청소년층에게는 AI 접근성을 제한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인건비 상승과 업무 비효율성을 감수하더라도 미래 세대 인재에 투자하고 육성하는 전략적 계획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사회의 AI 의존 현상을 거론하며 “AI 중독이 현재의 게임 중독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배경으로 ‘일라이자 효과’를 설명했다. 이는 알고리즘과 코드에 기반해 움직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마치 사람처럼 인식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임 교수는 “현재 사람과 가장 비슷한 패턴과 움직임을 보이는 게 AI라는 점에서 AI를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보건·의학 등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 사안마저 AI에 의존하는 장면을 보면 AI에 대한 잘못된 신뢰감이 걱정스러울 정도라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이런 중독은 특히 청소년과 사회적 약자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임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과거 인터넷·게임을 규제할 때처럼 거센 반발이 불가피하겠지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전략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일정 연령대 미만은 AI에 대한 접근성을 낮춘다든지, 보호자와 함께 AI에 대해 배우며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을 의무화한다든지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에 대한 과한 의존성이 인간만이 가진 필수 함양인 ‘정서적 능력’을 퇴화시킬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L-ESG 평가연구원장)는 “‘AI에게는 마음이 없다’는 말처럼, 감정의 영역은 아직 AI가 대체 불가능한 분야로 남아 있다”며 “콜센터에 투입된 AI처럼 일정 작업을 패턴화시킨 업무를 익힌 프로그램은 등장할 수 있지만, 정서적 기능을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감정이나 정서 분야마저 AI에 일임했을 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은 기업들 눈에 인건비 절감이라는 성과가 보일 수 있지만, 정서적 직무에 대한 수요를 AI가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고객만족도 측면에서는 분명한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정서와 감정이 필요한 분야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AI로 대체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며 “AI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과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을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하는 기업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AI가 우리 사회에 녹아들며 빠른 변화가 생기는 상황에서, 이런 파도에 대비한 대처가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AI안전연구소 소장인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단순 작업이나 반복된 시나리오에 의해 움직이는 직업은 대부분 AI가 대체할 것이라고 보고 이 인력들에 대한 재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구성원들이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을 때를 대비해 그들이 설 자리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업들이 인력을 AI로 대체하는 기류에 대해서도 “다음 세대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 등 고비용 인력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중견급 개발자 1명이 생성형 AI 여럿을 가동하며 최종 검수만 맡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초·중급자 수준의 실무진 여럿과 중견급 관리자로 구성된 팀이 성과를 내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야 투자금 대비 효율이 극대화되니 옳은 선택처럼 보이겠지만, 10~20년 뒤에는 누가 ‘중견급 관리자’ 역할을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시간이 흘러 현재의 관리자급 직원들이 은퇴할 때에는, AI를 감독할 실력 있는 직원이 부재할 것이란 지적이다. 김 교수는 “지금 당장 인건비가 추가로 들더라도 국가적 인재 양성·보존 차원에서 대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다소 과격한 ‘AI세’ 같은 방법까지 제시했다. 김 교수 설명에 따르면 AI세는 AI를 통해 이익을 본 기업을 상대로 걷는 세금이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AI 기술 도입으로 100명의 인력을 필요로 하던 기업이 50명만 고용하게 됐다면 50명의 인건비에 해당하는 금액 중 일부를 AI세로 걷자는 것”이라며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을 이용해 AI에게 직업을 대체당한 인력에게 기본 수당처럼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라고 했다.

이런 전문가들의 지적과 우려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청소년층에 대해 AI 접근을 제한하는 정책만 해도 14년 전 게임 중독을 막는다는 취지로 제정됐던 ‘셧다운제’처럼 강한 비판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AI세의 경우에도 당장 증세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이와 관련해 “AI가 우리 사회에 빠르게 침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 자체가 전면에 드러나 있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라며 “국가뿐 아니라 기업과 개인, 제도권까지 모두 힘을 합쳐 어떻게 체계를 변화시켜나갈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박선영 양윤선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