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자율주행 택시 피할 수 없어… 규제 풀고 면허 매입해야”

입력 2025-09-02 18:49

한국이 본격적인 ‘자율주행 택시’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서둘러 규제를 풀고 기존 택시업계를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제언이 나왔다. 과거 타다·우버 등장 때처럼 현업 종사자들의 반발만 의식하다가는 자칫 기술 혁신과 소비자 편익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이 2일 발표한 ‘자율주행시대 한국 택시 서비스의 위기와 혁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약 30억 달러였던 전 세계 자율주행 택시 시장 규모는 연평균 51.4%씩 성장해 오는 2034년이면 1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택시 시장에서는 2035년 자율주행 택시 점유율이 매출액 기준 25~50%에 이를 전망이다.


노진영 한은 통화정책국 정책제도팀장은 “자율주행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면서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고, 기존 택시산업의 연착륙 비용은 우리 사회 모두가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주장하는 자율주행 택시의 강점은 명확하다. 우선 기존 택시보다 적은 비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운행되는 자율주행 택시의 요금은 현재 마일당 4.52달러로 일반 택시(6.03달러)보다 저렴하다. 기술 발전과 보급 확대를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는 기존 택시의 절반 이하(2.84달러)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24시간 내내 탑승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보고서는 서울시 택시의 10%(약 7000대)를 자율주행 택시로 대체할 경우 매년 1600억원에 달하는 소비자 후생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자율주행 택시 선도국인 미국과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술 개발에만 각각 14조원 이상을 투입한 이들은 지금도 1억㎞가 넘는 실제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인공지능(AI)을 훈련시키는 중이다.

하지만 전통의 자동차 강국인 한국의 자율주행 진도는 확연히 뒤처져 있다. 2021년 택시기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타다 방지법’으로 알려진 개정 여객자동차법을 도입한 이래 대부분의 승차 공유 서비스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 팀장은 “현장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이 미국, 중국보다 3년 이상 뒤처져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택시 면허 총량규제를 완화하고 자율주행 택시 사업자의 시장 진입 통로를 뚫어줘야 ‘추종자’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처럼 자율주행 택시를 기존 택시와는 별도의 사업으로 정의해 독립적인 상용면허를 부여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노 팀장은 “자율주행 택시를 실제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테스트가 필수적인데 이에 대한 규제완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존 종사자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는 정부가 개인택시 면허를 사들여 ‘탈출구’를 마련해 주는 방안이 제시됐다. 2020년 우버 도입 시기 호주 서호주 주정부의 대처에서 착안한 정책이다. 한은에 따르면 개인택시 면허 수가 4만9074개, 면허 가격이 1억2000만원인 서울에서 모든 면허를 사들이려면 약 5조8900억원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택시 탑승 건수마다 10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해 5년간 2조3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면 호주와 유사하게 시세의 39% 수준으로 이를 매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