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수영(이하 가명·15)이는 지난해 겨울 SNS에서 처음 자해를 접했다. 무심코 들어간 친한 친구의 계정은 자해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일명 ‘자해계’였다. 그때부터 #우울계, #쫄보자해(부상 정도가 약한 비자살적 자해) 등 관련 해시태그를 알게 됐고 게시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평소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증 치료를 받던 수영이는 결국 이들을 따라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해 사진에 댓글이 달리며 공감을 받으면 왠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도 학교 상담센터는 행여 친구들에게 들킬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SNS는 자해·자살 관련 유해 정보를 퍼트리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청소년들은 제도권에서 시행하는 학교 상담 프로그램을 외면하고 온라인 공간으로 도피하고 있다. 관련 단어를 검색하면 청소년들이 올리는 자해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당장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상태의 사진도 적지 않다. SNS에 노출된 10대를 노린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2일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상 자살 유발 및 유해 정보 신고 건수는 2020년 9만772건에서 지난해 40만136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재단이 자살 유발 정보와 함께 모니터링하는 자살 유해 정보는 자해 사진이 대표적이다. ‘자살각’(자살을 생각할 만큼 부정적인 상황) 등 인터넷상 생명 경시 표현 등도 포함된다. 자살 유발 정보 유통 시 자살예방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해 관련 게시물을 SNS 운영 업체 측에 신고해도 즉각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살예방 단체 관계자는 “심각한 자살 유발 정보는 삭제가 신속히 이뤄지는 편이지만 자해 사진 같은 경우 표현의 자유라며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해 사진을 올리는 청소년들은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자해 계정을 운영하는 학생들은 음란성 메시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생 지연이는 “술이나 담배를 사줄테니 성희롱을 하게 해달라는 메시지를 여럿 받았다”고 말했다. 중학생 수진이는 “익명의 사람에게 조건만남 제안을 수십 건 받았다”고 전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판결문 3452건을 분석한 결과, SNS나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 비중은 유죄 판결 확정 시점 기준 2019년 8.3%에서 2021년 21.7%, 2023년 24%로 매년 증가세다.
자해 계정을 운영하는 것을 빌미로 10대들을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수진이는 "'자해계를 하는 네가 누군지 안다. 학교에 소문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기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일부 청소년들은 미성년자임에도 SNS상 담배·주류 대리구매 계정에서 술이나 담배를 사본 적 있다는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10대들이 현실이 아닌 온라인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범죄에 노출되는 주요 원인은 제도권 프로그램을 신뢰하지 못하는 영향도 크다는 지적이다. 국민일보가 인터뷰한 10대 청소년 대다수가 학교에 설치된 심리상담 기구 '위(Wee)클래스'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위클래스의 가장 큰 불만으로 꼽은 건 자해 사실이 부모나 담임 교사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학생 윤정이는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은 자해 관련 대화 녹음이 보호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했다"며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알게 되는 게 두려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위클래스 상담 내용이 보호자에게 알려졌지만 정서적 지지를 못 받거나 또래에게 자해 사실을 들키는 등 2차 피해를 겪었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 지연이는 "위클래스에서 자해를 고백하자 선생님은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상담 교사가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담임 선생님께 알렸다"며 "이후 교실에서 내가 자해한다는 소문이 났고, 학원에서까지 공개적으로 혼났다"고 말했다.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위클래스 상담 내용은 비밀 보장이 원칙이다. 그러나 자해·자살 시도와 같이 학생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문제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보호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교육부 담당자는 "자해 사실처럼 학생 안전과 직결된 사안을 부모나 담임 교사에게 알리지 않으면 위험을 예방하기 어렵다"며 "자살 위험자를 조기 발견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건 자살예방법에도 규정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클래스를 비롯한 학교 내 상담 프로그램이 보다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상담 교사가 단순히 학생들의 말을 듣는 데 그치거나, 자해는 멈춰야 한다는 당연한 말만 반복하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자해를 하는 학생들을 상대할 때 이들의 정서나 인지 왜곡을 제대로 평가하고 적절히 개입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도 "위클래스 이용률을 높이려면 학생이 자발적으로 힘든 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 환경을 조성해 공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아 이찬희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