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와 박수 속에서도 공허함을 감추지 못하던 시절이 이어졌다. 20대 초반에 접어든 나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공연차 한국에 머무는 사이 가족들이 텍사스 휴스턴으로 이주했다. 그렇게 가게 된 낯선 도시 휴스턴은 내 인생에 가장 치명적인 경험을 안겼다. 바로 마약과의 첫 만남이다.
그 시절 만난 K형은 늘 자신감이 넘쳤고,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었다. 부모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을 그 형에게는 숨김없이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갱단과 어울리며 마약에 깊이 발을 들인 사람이었다. 어느 날 클럽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은밀히 작은 봉지를 내밀며 내게 말했다. “이거 아주 좋은 거야. 힘 날 거야.” 나는 그를 믿었다. 그 순간, 무심코 건네받은 코카인이 내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첫 마약의 경험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마약을 처음 경험했던 그날 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그 기분을 느끼고 싶은 갈망과 뭔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한 번 열린 문은 다시 닫히지 않았다.
코카인에서 시작된 마약은 크랙, 헤로인, LSD로 이어졌다. 특히 싸구려지만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크랙은 내 삶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몇 분 간격으로 다시 찾아오는 갈망 때문에 밥도 굶고 밤낮없이 그것만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정도쯤이야’ 하고 숨길 수 있었지만 점점 내 영혼은 불안과 공허에 갉아 먹혔다. 화려했던 무대와 음악은 여전히 내 삶의 한 축이었지만 그 뒤편에서는 마약과 폭력이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총을 들고 다니며 위험한 순간도 수없이 넘겼다. 피 흘리는 친구를 부축해 편의점 뒤에서 밤새 지혈하던 기억, 시내 모텔에 숨어 며칠을 벌벌 떨던 기억, 빗길 고속도로에서 차가 세 바퀴나 구른 사고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 겪기도 힘든 죽음의 고비를 나는 마치 일상처럼 겪었다. 그때마다 ‘이번에는 끝이구나’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또다시 마약에 몸을 내맡겼다.
내 안엔 정반대의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 청중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천사 같은 뮤지션’의 모습 말이다.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고 청춘들은 내 연주를 동경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곧바로 마약에 취해 무너져가는 ‘악마 같은 방황자’로 돌아갔다. 그 사이 간극이 커질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를 아껴주던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넌 참 이상한 사람이야. 미워하고 멀리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사람.” 그 말은 내 삶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마약과 음악, 천사와 악마. 그렇게 나는 두 얼굴을 가진 채 파멸을 향한 길 위에 서 있었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