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발걸음이 동남아시아 제약시장을 향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가운데 대표적인 ‘파머징’(Pharmacy+Emerging) 마켓으로 꼽히며 국내 기업들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파머징은 의료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자국 내 생산 역량이 부족해 해외 제약사에 의존하는 신흥시장을 뜻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인플릭시맙)와 유방암·위암 치료제 ‘허쥬마’(트라스투주맙)를 각각 지난 6월과 8월 베트남에 출시했다. 램시마는 현지 최대 규모의 군 병원과 공급 계약을 맺어 1년간 납품하기로 했다. 허쥬마 역시 출시 직후 베트남 중남부 지역 의료기관 입찰에서 낙찰돼 2년간 공급이 확정됐다.
셀트리온은 하반기 중 인플릭시맙 피하주사 제형인 ‘램시마SC’와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리툭시맙)를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설립한 베트남 법인을 활용해 입찰 중심의 시장 구조에 대응하고, 영업 인력도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GC녹십자 역시 백신 분야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체 개발한 균주를 기반으로 만든 수두백신 ‘배리셀라주’가 최근 베트남 의약품청으로부터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2회 접종 방식인 ‘2도즈’ 임상 3상도 준비 중이다. 연내 베트남 보건 당국에 시험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수두백신은 개발도상국에서 예방 수요가 높아 향후 매출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원제약은 진통제 신약으로 현지 공략에 나섰다. 국산 12호 신약 ‘펠루비’와 트라마돌을 결합한 복합 진통제 ‘DW1021’의 베트남 임상 1상을 최근 마무리했다. 대원제약은 수출과 연구개발·상업화까지 아우르는 현지화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지 기업 인수를 통해 진출 속도를 높이는 사례도 있다. 동화약품은 2023년 베트남 약국 체인 ‘중선파마’ 지분을 인수하며 베트남 시장에 발을 들였다. 인수 당시 140여개에 불과했던 약국 매장은 현재 239개까지 확대했다. 내년까지 460개로 늘릴 계획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앞다퉈 베트남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확실한 성장성’이 자리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베트남 제약시장 규모는 약 70억 달러(약 9조7000억원)에 이르며 연평균 성장률은 7%를 넘어선다. 인구 1억명에 이르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가진 데다 고령화와 소득 증가가 맞물리면서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베트남은 아세안 시장 전체로 확장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도 한다. 베트남에서의 성공 경험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인근 국가 진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은 인구 구조와 소득 수준을 고려할 때 동남아 제약산업의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베트남 정부가 자국 내 생산을 장려하며 현지 제조 역량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 등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