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업계가 변곡점을 맞고 있다. 1막은 위고비와 젭바운드(마운자로) 등 GLP-1 주사제가 열었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과 복용 편의성 혁신을 더한 치료제가 새로운 무대를 열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제형 다변화와 차세대 기전에 주목해 주도권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한국 맞춤형 전략’을 앞세워 틈새 공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글로벌 제약사 테바 파마슈티컬스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비만치료제 ‘삭센다’의 복제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 가운데 첫 복제약이다. 업계에선 비만 치료제 가격 인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향후 위고비·젭바운드 등 주요 성분의 특허가 만료되면 비만치료제 가격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복용 편의성도 승부처로 떠올랐다. 일라이릴리는 최근 먹는 GLP-1 작용제 ‘오르포글리프론’의 세번째 3상 임상시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고 밝혔다. 노보 노디스크의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도 임상에서 약 15%의 체중 감소를 보였다. 아스트라제네카도 중국 에코진과 알약 개발에 나서며 경쟁에 합류했다.
바이오 업체들이 앞 다퉈 비만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배경엔 폭발적인 수요가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은 2023년 190억 달러(약 26조4800억원)에서 2028년 373억 달러(약 52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세계비만연맹은 2050년에 전 세계 성인 인구의 절반이 넘는 약 38억명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역시 2023년 기준 19세 이상 비만 유병률이 37.2%에 달한다.
국내 제약사들은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 맞춤형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주 1회 투여형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서양인 비만 환자(BMI 30 이상)를 대상으로 개발한 것과 달리, 한국인 체형을 반영한 BMI 25 이상을 기준으로 삼았다. 평택 스마트플랜트 생산으로 가격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제형 혁신에도 적극적이다. 대웅제약과 대웅테라퓨틱스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마이크로니들 패치 제형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2028년 상용화가 목표다. 대원제약도 마이크로니들 전문 기업 라파스와 함께 붙이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패치 제형은 주사제를 스스로 투약하기 어려운 어린이·고령층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는 비만약 연구개발 트렌드를 아밀린·RNA 등 차세대 기전으로 넓히며 ‘포스트 GLP-1’ 경쟁에도 나서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리플리케이트 바이오사이언스와 협력해 자가 복제 리보핵산(srRNA) 기술을 기반으로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로슈는 지난 3월 덴마크 바이오기업 질랜드 파마와 장기 지속형 아밀린 유사체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GLP-1 중심이다.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신규 후보 물질 발굴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비만 치료제 개발과 상업화 트렌드가 GLP-1 중심에서 변화하고 있다. 현재 초기 단계의 GLP-1RA 기전에 집중된 후보 물질의 상업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