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원(78)씨는 지난 6월 오랜 절친으로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확인을 위해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으나 부재중이었다. 배씨는 고민 끝에 링크를 눌렀는데, 그 순간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됐다. 곧 배씨의 휴대폰에 저장된 약 700명의 연락처로 똑같은 청첩장 메시지가 전송됐다. 배씨는 “지인들에게 링크를 누르지 말라는 연락을 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며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수법을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28일 부산 남구노인복지관에서는 LG유플러스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노인 대상 ‘보이스피싱·스미싱 예방 교육’ 첫 수업이 열렸다. 배씨를 비롯한 노인들은 손을 들고 저마다의 생생한 피해 경험을 털어놨다. 이어 LG유플러스 직원들이 어르신과 일대일로 짝을 이뤄 기본적인 스마트폰 조작법을 안내하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스미싱 예방법을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스미싱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AI로 사람 목소리를 복제하는 딥보이스 등도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보이스피싱·스미싱 범죄 피해액은 799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95% 늘었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은 날로 진화하는 사기 수법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LG유플러스가 전국 28개 노인복지관을 중심으로 보이스피싱·스피싱 예방 교육을 시작한 이유다.
이날 강의를 맡은 박요환 LG유플러스 동래직영점 점장은 “피싱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보다도 개인정보 해킹”이라며 “낯선 연락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말고 진위 여부를 차분히 확인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택배, 카드, 과태료, 대출 심사, 공공기관·가족 사칭 등 다양한 피싱 수법을 설명하자 곳곳에선 놀라움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70대 문모씨는 “최근 주변 노인들 사이에는 독도가 우리 땅이 맞는지 아닌지 질문하는 스미싱 메시지도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LG유플러스는 AI 기술로 위·변조 음성을 판별하는 ‘익시오’의 안티딥보이스 기능도 시연했다. 노인들이 휴대폰 화면에 뜬 문장을 소리내어 읽자 곧바로 그 목소리가 AI로 합성돼 전화를 걸어왔다. 익시오 앱에는 ‘보이스피싱 위험 알림: AI가 분석한 위조 목소리’라는 경고 문구가 붉게 표시됐다. 추종림(86)씨는 “보이스피싱과 AI 발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교육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대처 방법이 필요한지 알게 돼 유익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LG유플러스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각 통신사별 AI 기반 보이스피싱 예방 앱을 설치하고 휴대폰 소액결제 차단법도 배웠다.
송지원 남구노인복지관 대리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이제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며 “어르신들도 스마트폰 활용법과 보이스피싱·스미싱 예방법을 함께 배워나갈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양윤선 기자 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