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사 A씨(44)는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데 챗GPT를 활용하고 있다. 학교에서 예산 지원을 받아 유료 버전을 결제했다. 학생들의 생활과 학습 상황에 대한 정보를 입력해 문장에 살을 붙이는 등 분량을 늘리는 정도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관찰해 온 교사가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을 인공지능(AI)에 맡기는 게 꺼림직하다는 반응도 있다. 지금은 보조적 수단에 그치지만, 머지않아 AI가 주도적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준다는 사설 업체들도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홍보하고 있는 생활기록부 작성 AI는 월 이용 금액이 2만~3만원가량이다. 업체들은 생활기록부 기록 초안 작성과 수업 자료 생성 등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수업 일지, 수업 지도안, 운영 계획서 등도 AI가 자동으로 작성한다고 홍보한다.
AI를 앞세운 자격증·수료증 등을 만든 민간 교육업체들도 난립하고 있다. 국비교육 지원을 받는 업체들의 광고를 보면, 정체가 모호한 자격증을 온라인 수업으로 1주일 만에 취득할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운영하는 민간 자격 정보서비스를 보면 인공지능 또는 AI라는 명칭이 붙은 민간 자격은 497개에 달한다. ‘AI 그림책 놀음 지도사’ ‘AI 생활활용 전문가’ ‘AI 활용 영어 코칭 전문가’ 등 전문성이 의심되는 자격증도 다수다.
회사에서 안내한 기관의 AI 교육을 받고 있는 직장인 B씨(35) 역시 교육 업체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일반 사무직인 B씨는 이미 챗GPT를 보고서 작성에 활용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권장한 교육은 챗GPT의 개념, 할루시네이션(환각)의 의미 등 기술적 용어를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챗GPT 계정 만들기부터 시작하는 초보적 수준의 교육도 있었다. 강사도 전문가가 아닌 민간 기관의 대표 직함이었다. B씨는 “이미 챗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챗GPT의 작동 원리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가 급격하게 도래하면서 과도기를 맞은 사회에 공통적 규범이 부족해 이 같은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주 AI안전연구소 소장은 “생활기록부는 교사가 학생을 관찰한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해야 하는데, 챗GPT를 활용하면 개별 학생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작성되는 등 차별화가 부족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AI 활용해 대한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