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의존하다 먹통 되면 대혼란… ‘AI 쇼크’ 대비해야

입력 2025-09-02 00:17

한 스타트업의 딥러닝 연구 부서에서 일하는 박모(34)씨는 지난 6월 돌연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먹통’이 되자 하던 일을 멈추고 귀가했다. 박씨는 “수작업 프로그래밍은 해본지도 오래됐고, AI에게 시키는 것보다 효율도 너무 떨어진다”며 “개발자는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기초적인 직무나 작업도 생성형 AI에 일임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AI를 보조 도구로서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AI에 의존하지 않으면 직무 자체를 수행하지 못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공격 등으로 AI를 갑자기 사용하지 못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사회 전반이 마비되는 ‘AI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노동기구가 지난 5월 발간한 ‘생성형 AI와 직업: 직업 노출도에 대한 국제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사무직(0.60), 애플리케이션(앱) 프로그래머(0.57), 워드프로세서 작업자(0.65)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들의 AI 직무 의존도가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표는 해당 직업군의 직무 프로세스가 AI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숫자가 높을수록 AI로 대체되기 쉬운 상태임을 의미한다.


직무를 AI에 맡기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제는 의존도다. 이미 이메일 작성, 영문 번역, 엑셀 시트 생성, 단순 코딩 작업 등은 챗GPT에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사람의 직무 수행 능력을 빠르게 사장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수반한다. 특히 수학·과학같이 결괏값을 도출하는 과정를 이해하는 사고력이 중요한 분야에서의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AI가 모종의 이유로 작동을 중지할 경우 사회 곳곳에서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챗GPT 먹통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업무와 학업, 연구 등에서 막대한 차질을 빚었다는 경험담이 전세계적으로 속출한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AI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기 전에 한국형 ‘소버린(주권) AI’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현재 생성형 AI 시장을 리드하는 업체는 오픈AI·구글·앤트로픽 등 대부분 미국 기업이다. 이들이 구축한 생태계에 안주하다 보면 금융·산업·공공기관 등의 AI 전환에 따른 사용권·이용료 등이 ‘볼모’로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정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시스템이 운영되는 기업·기관의 경우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AI 업계 관계자는 “AI와 사람이 안정적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AI가 전담하는 직무일지라도 반드시 담당자가 수작업으로 프로세스를 익히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며 “AI 사용 권리를 빌미로 우리 산업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만의 소버린 AI를 서둘러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