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상복 대결한 여야

입력 2025-09-02 01:30
한복을 입은 의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상복을 입고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해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 이병주 기자

지난해 9월 정기국회 개회식은 3개월 이상 지연된 22대 국회 개원식과 함께 열렸다. 개원식에는 행정부 수장이 관례적으로 참석해 협치에 대한 메시지를 내왔다. 하지만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야당에 대한 불만 때문에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개원식에 불참했다. 한국 정치의 극한 대결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22대 국회 두 번째이자 이재명정부 첫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어제의 풍경도 지난해 못지않게 흉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당초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류에 대한 자긍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의원들에게 개회식 때 한복 차림으로 와 달라고 요청했다. 여당은 이에 응해 한복을 입었지만 국민의힘은 검정 양복과 넥타이, 근조 리본을 달고 본회의장에 나타났다. 여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과 입법 강행에 항의하는 차원에서다. 그간 제1야당의 존재를 무시해온 여당의 오만함과 개회식마저 대결의 장으로 만든 야당의 옹졸함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지금 전 세계가 한국 문화에 주목하는데 정작 우리 정치 문화는 4류를 지나 점점 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정기국회는 유례 없는 복합 위기와 도전 속에 열린다. 대미 수출 감소 등 미국발 관세 후폭풍이 가시화됐고, 국내 경제는 저성장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주한미군 역할 조정 움직임과 북·중·러 협력 등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도 불안정하다. 10월 말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라는 큰 행사도 치러내야 한다. 이런 큰일들이 몰려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게 정상적인 정치다. 전방위 협치는 아니더라도 민생 회복과 대외 위기 극복을 위한 최소한의 휴전이라도 해야 한다.

여당은 정기국회 100일을 파행이 아닌 민생을 위한 국회로 만들겠다면 지금이라도 일방적인 입법을 중단하고 야당과 최대한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강행 처리하고, 국정 수행에 필요한 입법만 야당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태도로는 민생 국회를 만들 수 없다. 정기국회를 아예 ‘전쟁’으로 규정하고 잘 싸우는 사람만 공천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국민의힘의 자세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보다 민생 입법에 더 적극 나서고, 협조할 것은 먼저 협조하면 국민들 마음도 얻고 여당도 결국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야 모두 이번 정기국회만큼은 나쁜 정치로 경쟁하지 말고, 진정한 민생 정치로 승부를 걸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