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간과되는 사실은 문제의 원인이 게임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는 반면, 또 다른 이는 우울과 고립을 심화한다. 즉 게임의 효과는 게임 속성이 아니라 사용자의 환경과 심리적 조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해외 저명 학술지(SSCI)에 발표된 한국 게임이용자들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은 이 점을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청소년 403명을 3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는 친구·교사·부모와 관계망이 튼튼한 집단은 게임을 통해 삶의 만족을 높였지만,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집단은 오히려 우울과 과몰입이 증가하는 악순환(vicious circle) 빠졌다. 한편, 1037명의 청소년 패널을 5년간 분석한 연구는 학업 부담이 클수록 자기조절력이 약화되며 병리적 게임 사용 위험이 증가했다. 특히 685명의 부모를 포함한 3년간의 종단 분석에서는 부모의 심리적 안정 여부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부모가 불안하거나 우울하면 자녀는 공격성과 과몰입이 두드러졌지만, 부모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대화가 원활한 경우 자녀는 학업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게임을 긍정적으로 활용했다.
게임이용자 778명 대상의 연구도 같은 맥락을 보여준다. MMORPG나 팀 기반 게임에서 리더십과 사회적 효능감을 얻는 경우 게임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부모와의 관계가 불안정하거나 또래 갈등이 큰 집단에서는 과몰입 지수가 높았다. 결국 게임 내 긍정적 경험은 선용을, 게임 밖 부정적 환경은 과몰입을 각각 강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의 연구들은 한 가지 결론을 향한다. 게임은 부정적 결과에 직접적인 죄가 없으며, 오히려 이용자의 삶의 맥락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 역시 게임 자체의 규제가 아니라 이용자 상담, 또래 관계 지원, 가정 내 소통 강화, 자기조절력 교육 등 사회환경적 요인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게임은 이미 XR, 메타버스, AI와 결합하며 종합예술이자 미래 사회의 실험실로 발전했다. 텍스트와 영상, 기술과 예술, 네트워크와 인터랙션이 융합된 게임은 산업적 가치가 무한하다. 실제로 한국 게임산업은 23조 원 규모로 성장해 K-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주축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게임이용장애’ 같은 부정적 담론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다. 물론 부정적 영향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게임 탓이 아님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사회심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거울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융합적 도구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게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과 맥락이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글로벌 문화강국이자 첨단 복지국가를 향한 정책의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다.
정의준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