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노자와 폴라니의 AI 역설

입력 2025-09-02 00:40

노자는 도덕경 첫장부터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즉 도를 도라 말하면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흐르는 강물을 손으로 움켜쥐려 해야 소용없듯이 인간이 언어로 정의하고 해석하는 순간, 대상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어로 규정하는 걸 버리라”는 게 아니라, 언어와 개념이 진리를 다 담을 수 없음을 늘 의식하라는 경계로 읽힌다. 언어로 붙잡으려는 행위 자체가 존재의 풍부함을 가두는 제약이라는 점에서, 노자의 말은 오늘날의 AI 논쟁에도 은근히 겹쳐 보인다.

폴란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도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비슷한 경구를 남겼다. 운전, 얼굴 인식, 악기 연주 같은 수많은 일들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수행하지만, 언어로 규칙화하기 어렵다. 인간이 가진 이런 암묵지(tacit knowledge)는 AI와 자동화의 난공불락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데이비드 오터 교수는 2014년 이 난제를 ‘폴라니의 역설’이라 명명했고, 이는 이후 AI 담론의 핵심적 배경이 됐다.

그런데 폴라니의 역설을 넘어서는 듯 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자, 최근 다시 MIT가 제동을 걸었다. MIT 보고서는 AI 파일럿 프로젝트의 95%가 실질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같은 대학의 다론 아세모글루 교수는 “AI가 실제로 대체할 수 있는 일자리는 5%에 불과하다”며 언어로 포장된 AI의 전능함이 과장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AI가 그 암묵지를 규칙화하는 대신 딥러닝이나 거대언어모델(LLM) 등 우회로를 통해 인간을 흉내 내는 길을 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본질에서 멀어진다”

노자와 폴라니의 경구는 인류가 지속하는 한 깰 수 없는 암묵지, 곧 언어와 이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세계의 진실을 일깨운다. 그렇기에 AI 신화도, 기술 패권도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여백 위에서 성찰돼야 한다. 그 여백이야말로 인간이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