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분산 전력망 시스템에 거는 기대

입력 2025-09-02 00:32

에너지 전환과 인공지능(AI) 혁명 시대를 맞이해 전력망은 단순한 송배전 인프라를 넘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 과거 중앙집중형 발전과 일방향 송전 구조에서는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소비지로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국한된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으로 등장하고, 송전망 건설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력계통의 중요한 문제가 됐다. 송전망 건설과 더불어 배전망을 혁신해야 재생에너지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하고 전기차와 AI 데이터센터 같은 새로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분산 전력망을 통해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인 이유다.

우선 전력 공급 측면에서는 간헐적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입지 제약으로 지역 단위에 분산 설치돼 발전량 변동성이 크다. 기존 중앙집중형 전력망에서는 주파수, 전압, 위상각 안정도를 초 단위로 맞춰야 하는데 이러한 변동성을 흡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배전단에 재생발전과 저장장치를 통합 운영하는 차세대 분산 전력망 구축은 수급 균형을 통해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전력 수요 패턴도 불규칙하게 변화하고 있어 대응이 필요하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대규모 데이터센터, 난방 방식 전기화, 산업의 열수요 전기화 등으로 전력소비 패턴은 점점 더 지역적이고 불규칙하게 변한다. 수요를 최적화할 분산 전력망은 수요반응(DR), 양방향 전력거래, 지리적 시간적 세분화 방식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할 수 있다. AI를 활용한 유연한 시장 구조를 통하면 수요 이전을 용이하게 하고 전력 피크 완화와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결국 분산 전력망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전력망을 ‘공급자 중심의 인프라’에서 ‘참여자 중심의 플랫폼’으로 바꾸는 과정이며,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최적 조합과 AI의 계통 운영을 결합한 통합 전력 솔루션 비지니스 모델로 성장시키면 새로운 수출 상품화도 가능하다. 또한 분산형 전력망은 지역 단위에서 자급률을 높이고 정전이 발생해도 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한 ‘레질리언스’를 확보해 국가 전체 전력 시스템의 회복력을 높인다. 정부가 최근 출범시킨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거버넌스’와 ‘분산 전력망 구축 로드맵’은 이러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기존의 일방향적 전력 정책을 넘어 이해관계자가 협력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제시한다. 특히 데이터 기반 전력망 운영, AI를 활용한 예측·제어, 지역 단위 전력시장 개설 등은 한국 전력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차세대 전력망 시스템 구축, 새 전력망 투자와 더불어 안정적이고 유연한 분산 전력망은 새로운 ‘전력의 길’의 초석이 될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