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우·폭염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의 발생 빈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국내 경제와 물가에 유의미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은이 31일 발표한 ‘최근 집중호우와 폭염의 성장·물가 영향’ 보고서에서 2020년대 들어 빈번해진 기후재난 탓에 한국의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앞선 2010년대보다 평균 0.1% 포인트씩 감소했다고 계산했다. 연간 성장률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0.04% 포인트의 낙폭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여년간 한국에서는 집중호우·폭염 등 기후재난의 발생 빈도가 급증했다. 시간당 30㎜ 이상 비가 내리는 집중호우 발생일수는 2000년대만 해도 연평균 39일이었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49일로 23.9% 증가했다.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을 기록한 폭염 발생일수는 같은 기간 연평균 46일에서 67일까지 늘어 증가율(44.9%)이 더 가팔랐다.
급증한 기후재난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주로 건설업·농림어업·대면서비스처럼 외부 활동이 필수적인 산업에 악재로 작용했다. 농림어업은 집중호우 발생일수가 10일 증가하면 연간 산업 성장률이 2.8% 포인트 곤두박질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자동차 등이 속한 제조업은 그나마 실내 작업 비중이 높아 제한적인 영향을 받았다.
기후재난은 물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직접 피해가 발생하는 분야는 농·축·수산물 물가다. 집중호우와 폭염 피해가 집중됐던 지난 7월 시금치·깻잎 등 채소류와 복숭아·수박 등 과일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 같은 달 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23.1도)보다 1.5도나 높은 24.6도를 기록하자 수산물 가격도 1년 전보다 7.3% 치솟았다.
비싸진 농·축·수산물 가격이 다른 분야로 전이된다는 점도 문제다. 농·축·수산물 물가가 10% 오를 경우 3개 분기 이후 외식 가격이 0.9% 올라가는 식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종합적인 효과를 고려했을 때 7월 발생한 폭우와 폭염이 올해 3분기 소비자물가를 0.3% 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분석했다. 연간 기준 0.1% 포인트 수준의 상승효과다.
앞으로 극단적 기상 현상의 규모와 빈도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한은 관계자는 “한국 인프라는 과거 기후 여건을 토대로 설계돼 기상 급변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인프라와 재난대응 체계 구축 시에도 장기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선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