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온상 오명 쓴 알뜰폰… 규제 유탄에 시장재편 조짐

입력 2025-09-01 02:04

정부가 최근 발표한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에서 ‘대포폰’으로 악용되는 알뜰폰(MVNO)에 대한 진입장벽 강화 등의 조치를 예고하자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보안 투자 여력이 없는 영세 업체들이 고사하면서 대기업 산하 알뜰폰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1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8일 발표한 종합대책에는 알뜰폰 규제 강화 내용이 담겼다. 영세한 업체들이 난립해 있고, 비대면 등의 방식으로 쉽게 회선을 개통할 수 있는 알뜰폰 특성상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손에 넘어가 대포폰으로 악용되기 쉽다는 점에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이같은 대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급변한 모바일 중심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휴대전화가 통화나 메시지 등을 주고받는 연락 수단이었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사용자 환경이 모바일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본인인증 수단으로 진화했다. 이 때문에 전화나 문자 등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빼가는 피싱범들은 상대적으로 보안이 강력한 통신 3사 대신 알뜰폰을 노려왔다. 피해자 명의로 알뜰폰을 개통한 다음 시중은행·보험사 등 금융 앱을 깔아 본인인증을 마치고 이를 이용해 예금 자산을 탈취하거나 대출을 받아 가로채는 방식이다.

경찰청의 ‘통신사별 대포폰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알뜰폰사업자가 전체의 75.0%를 차지해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대포폰 4대 중 3대는 알뜰폰인 셈이다. 통신 3사(21.4%)를 합친 것보다 3배 이상 많은 규모다.


정부는 이동통신사 뿐 아니라 알뜰폰사업자에 대해서도 이상 징후 모니터링, 비정상 개통 현황 신고 의무화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를 소홀하게 한 것으로 판명되면 등록 취소, 영업 정지 등 강력한 징계 처분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영세한 업체들이 많은 업계 특성상 반발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알뜰폰 업계는 KB국민은행이 운영하는 KB리브엠조차 수년간 600억원 이상의 누적 적자를 볼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다. 지난 7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폐지되며 통신 3사의 보조금 지급이 합법화됐고 올해부터는 정부가 중소 사업자에게까지 전파사용료를 징수하며 부담이 더 커졌다.

일각에선 알뜰폰 시장이 ‘빅6’ 위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대기업 산하 알뜰폰 사업자는 통신사 5곳, 시중은행 1곳으로 이들의 합산 점유율이 50%를 넘어선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영세 업체들은 보안에 투자할 여력이 없고, 한다고 해도 수익성 악화를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며 “자칫 합리적이고 저렴한 요금제를 제공하겠다는 당초 정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