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지노박 (7) 화려한 무대 뒤 채울 수 없는 공허함으로 끝없는 방황

입력 2025-09-02 03:04
뮤지션 지노박이 2002년 미국 뉴욕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후드집업을 뒤집어 쓰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모습. 지노박 제공

이민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나는 점점 거칠어졌다. 학교에서는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고 집 밖에서는 “목사 아들이 왜 저 모양이냐”는 시선이 날 따라다녔다. 아버지의 신실한 모습은 철없던 시절의 내게 반발심만 자극했다. 나는 일부러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총을 차고 다녔다. 고속도로에서 누군가 내 운전을 방해한다 싶으면 총을 겨누며 상대를 위협했다. 겉으로 강한 척했지만 속은 늘 불안했다. 불안을 가리려고 더 폭력적인 길로 빠져들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다양한 결핍에 시달렸다. 친구 집의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과 풍족한 용돈이 부러웠다. 자동차를 가진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크고 작은 사고를 쳤다. 어느새 나는 동네 불량배 수준의 싸움꾼이 돼 있었다. “Do it(해보자고).” 한마디면 죄책감 없이 주먹을 휘둘렀고 무모한 싸움판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어떤 이들은 나를 ‘Tough Guy(거친 사내)’라고 불렀다.

그러다 20살 남짓 술집과 바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내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무대 위 연주는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 사이에서 “클럽에서만 머물기 아깝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 인연으로 한국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고 유명 뮤지션과도 연결되기도 했다.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삶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아파트를 얻었고 좋은 차를 탈 수 있었다. 매일 밤 파티를 즐기며 화려한 삶을 누렸다. 어디를 가든 뮤지션으로 환영받았고 그만큼의 돈과 인기가 따랐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무너지고 있었다. 클럽에서 싸움이 나면 총을 빼 드는 습관이 나왔다. 하마터면 무고한 사람을 죽일 뻔한 적도 있었고 그 사건은 나를 더 악명 높은 ‘총잡이’로 만들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악마 같은 삶을 살았다. 화려한 밤을 보내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엄습했다. 함께하던 동료가 마약에 손을 대서 몇 달 만에 몰라보게 망가진 모습, 공연을 함께한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내 가슴을 후벼팠다. 삶의 공허함을 느끼며 죽으려고 많은 약을 삼킨 적도 있었다. 다행히 다시 눈을 떴지만, 너무 괴로워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 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차라리 끝났으면 편했을 텐데….’ 삶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넘쳐나는 돈과 최고급 아파트, 비싼 스포츠카와 같이 남들이 부러워할 조건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늘 공허했다. 폭력으로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시간도, 음악으로 화려함을 누리던 순간도 결국 허무의 벽 앞에서 멈췄다. 마치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차처럼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끝을 보기 위해 내달리는 것 같았다. 죽음조차 날 거부하는 듯했고 그 아이러니가 내게 더 큰 절망을 안겼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 있는 걸까.’ 방황은 멈추지 않았고 내 안의 허무는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