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을 728조원으로 편성하며 27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 계획을 함께 발표했지만 급증하는 나랏빚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책적 판단에 따라 지출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재량지출’은 내년에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곳간이 넘친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등 민감한 지출 항목에 대한 구조조정 의지도 약해 보인다.
31일 기획재정부의 ‘2025~2029년 국가재정 운용 계획’에 따르면 정부 재정지출은 내년 728조원에서 연평균 5.5%씩 늘어 2029년 834조7000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이 중 재량지출은 연평균 4.6%씩 증가해 올해 338조4000억원(2차 추경 기준)에서 내년 340조원, 2029년 36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채무도 내년 1415조원, 2029년엔 1789조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라고 설명한 27조원 지출 구조조정은 모두 재량지출 항목이다.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인 민간·국제기구 협력 차관(-5021억원), 폐광지역 주민 지원을 위한 폐광대책비(-1186억원), 주택구입·전세자금(-3조7555억원) 예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전체 지출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는 구조조정보다 ‘용처 변경’에 가깝다는 평가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출 다이어트가 이뤄져야 구조조정을 했다고 할 수 있다”며 “전체 지출은 늘리면서 사업 대상만 바꾼 건 구조조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기초연금이나 교육교부금처럼 법에 지출 의무가 명시된 ‘의무지출’은 더 많이 늘어난다. 의무지출은 올해 364조8000억원에서 내년 388조원, 2029년 465조7000억원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전체 재정지출 가운데 의무지출 비중도 올해 51.9%에서 내년 53.3%, 2029년 55.8%로 불어난다. 기재부는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급증과 국채 이자 부담으로 의무지출 소요는 계속 증가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표적 의무지출 항목인 교육교부금의 구조조정은 뒷순위로 밀린 양상이다. 교육교부금은 국가가 지방 교육행정을 위해 지원하는 예산으로, 전국 교육청의 주 수입원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상관없이 내국세 일정 비율(20.79%)이 자동 할당돼 올해도 72조원이 투입된다. 지출 구조조정 목소리가 높지만 전국 교육청 및 이해관계자들의 표심과 맞물린 터라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교육세 배분 구조를 개편해 교육교부금 4103억원을 줄이고 고등교육 및 영유아 교육·보육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법 개정이 필요한 ‘내국세 연동제 개편’에는 선을 그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현재로선 그런 부분까지 재원 구조조정을 할 계획은 없다”며 “중앙재정의 효율성 제고에 더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확장 재정 기조 속에 재량지출 구조조정보다 더 어려운 의무지출을 줄일 의지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