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진 ‘호라이즌 유럽’ 과제 선정… 준회원국 자격 첫 성과

입력 2025-08-31 18:43
독일 자르브뤼켄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의 모습. 한때 존폐 기로까지 갔던 이곳은 '호라이즌 유럽' 과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첨단 바이오, 에너지·환경, 인공지능(AI) 융합 클러스터로 거듭났다. 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유럽연합(EU) 최대 연구지원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 과제에 한국 기관으로 처음 참여하게 됐다. 한국이 올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자격을 얻은 뒤 거둔 첫 성과다. KIST는 국내 기관들과 협업해 호라이즌 유럽 12개 과제에 제안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독일 자르브뤼켄 KIST 유럽연구소에서 만난 원유형 기획조정본부장은 “KIST 유럽연구소가 연구만 하는 기관에서 국내 기관들이 유럽 과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 플랫폼 기관으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매년 64억원 안팎의 예산으로 운영됐던 KIST 유럽연구소는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를 정통으로 맞았다. 지난해 예산이 기존 대비 35%가량 삭감된 43억원으로 책정되자 KIST 본원은 유럽연구소 존폐까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한국이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에 선정됐다는 희소식이 전해졌고, KIST 유럽연구소는 역할을 재정립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호라이즌 유럽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955억 유로(약 141조원)를 투입해 기후변화, 암,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글로벌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일 연구지원 프로그램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EU 회원국뿐 아니라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을 가진 비회원국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준회원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KIST가 참여해 선정된 과제는 수전해 장치와 연료전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PFAS(과불화화합물) 배출을 측정하고 저감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KIST 유럽연구소에서 에너지·환경 클러스터 연구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김상원 박사는 “한국이 준회원국이 되면서 KIST가 연구 과제 참여기관(participant)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수자원공사, 대학 연구소 등과 함께 제안서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호라이즌 유럽 연구 과제에 맞춰 KIST 유럽연구소는 지난 1월 첨단 바이오, 에너지·환경, 인공지능(AI) 융합 클러스터로 조직을 재편했다. 분야별로 ‘연구 코디네이터’ 직책을 두고 각 과제와 기관·연구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겼다.

이에 더해 연구자들이 각 분야에 맞는 과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호라이즌 유럽 에이전트’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AI 융합 클러스터 연구 코디네이터인 윤주용 박사는 “기존 챗GPT를 그대로 활용했더니 할루시네이션(환각)이 심해 제대로 쓸 수 없었다”며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입력해 챗GPT의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할루시네이션을 원천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K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진 점도 한국 연구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여건이 되고 있다. 윤 박사는 “유럽 연구자들과 만나 한국말로 회의를 시작할 때도 있다”며 “한국은 연구비가 풍부하고 기술 수준이 높다는 인식이 있어 공동연구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류보현 박사는 “유럽 연구자·기관들과 공동연구를 하면 유럽이 오랫동안 축적한 데이터와 연구 자산을 공유할 수 있어 한국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오상록 KIST 원장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과 인터뷰하는 모습. 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KIST는 내년에 설립 30주년을 맞는다. 오상록 KIST 원장은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성과를 헛되이 할 수 없어 연구소 역할을 재편한 것”이라며 “내년에 예산을 복원하고 내후년에는 더 늘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자르브뤼켄=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